VIEWPOINT

글씨를 넘어 예술로

<추사 김정희와 청조문인의 대화>
1.18(토)~3.15(일) | 서울서예박물관

중국을 넘어서고 우리 것을 아우르며 절대자유의 경지에 오른 추사 김정희의 예술세계를 만날 수 있는 전시.

“우는 듯 웃는 듯, 춤추는 듯 성낸 듯, 세찬 듯 부드러운 듯, 천변만화의 조화가 숨어 있다.”
추사秋史 김정희(1786~1856)의 글씨에 대해 미술사학자인 근원 김용준은 이렇게 감탄했다. 우리 눈에만 그리 보이는 게 아니었나 보다. 지난해 여름, 추사가 1809년 연행燕行으로 중국 땅을 밟은 지 210년 만에 추사 작품 117점이 처음 중국에서 공개되자 현지 반응은 뜨거웠다.

6월 18일 개막일부터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베이징 도심에 위치한 중국국가미술관 5층 전시장이 추사 작품으로 꽉 차 있었다. 기골이 장대한 먹글씨가 입구에서 관람객을 맞았다. ‘계산무진谿山無盡(계산은 끝이 없구나)’. 시내 계谿 자는 골짜기의 물이 쏟아져 내리는 듯하고, 뫼 산 자는 위로 올려붙여 여백을 확보했다. 게다가 무진無盡을 두 줄로 써서 연결한 파격적 배치라니! 추사가 안동 세도가 김수근에게 써준 것인데, 추사체의 완성도가 절정에 이른 68세 무렵에 쓴 것으로 추정된다. ‘계산무진’을 한참 들여다보던 우웨이산吳爲山 중국국가미술관장은 “글씨를 넘어선 그림”이라며 “큰 산과 강, 대자연을 보는 듯 기상이 웅대하고 변화무쌍한 품격을 지녔다”고 감탄했다.

중국을 넘어서고 우리 것을 아우르며 절대자유의 경지에 오른 추사 김정희의 예술세계를 만날 수 있는 전시.
중국을 넘어서고 우리 것을 아우르며 절대자유의 경지에 오른 추사 김정희의 예술세계를 만날 수 있는 전시.

<칠불게첩七佛偈帖>

하루 평균 5천 명, 두 달간 30만 명이 중국 전시를 보고 갔다. 서예가 황진핑黃金平은 “병풍 한 폭, 글자 한 자마다 고풍스러움과 소박함, 균형을 깬 듯하면서 다시 화합하는 아름다움을 느꼈다”고 했다. 우리구吳笠谷 중국 벼루문화위원회장은 “청나라 시대 서예의 대가인 등석여·이병수 등은 전서와 예서를 추구하는 데 머물렀지만 추사는 고전적인 각체를 두루 섞어 쓰면서 학예學藝가 일치하고 서가의 마음을 담아내는 경지로까지 나아갔다. 중국에 수많은 서예가가 있지만 추사 시대부터 지금까지 그를 뛰어넘는 대가는 단연코 없었다”고 극찬했다.

‘글로벌 추사’로 거듭나게 한 베이징 특별전이 금의환향했다. 서울서예박물관에서 지난 1월 개막한 <추사 김정희와 청조문인의 대화>는 지난해 중국국가미술관에서 열린 동명 전시의 귀국전이다. 간송미술문화재단, 과천시 추사박물관, 김종영미술관 등 30여 곳에서 모은 추사의 현판·대련·두루마리·병풍·서첩과 함께 추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20세기 작품까지 120여 점을 선보인다.

한중묵연韓中墨緣의 시작

추사는 사신으로 떠나는 부친 김노경(1766~1840)을 따라 청나라 연경燕京, 지금의 베이징에 갔다. 당시 그의 나이 스물셋. 이때 청나라 금석학의 대가 옹방강翁方綱(1733~1818)을 만난다. 필담筆談 대화가 이어진 첫 만남부터 강렬했다. “동쪽 나라에 이렇게 영특한 사람이 있었던가.” 노학자는 즉석에서 ‘경술문장 해동제일經術文章 海東第一’이라고 휘호를 써줬고, 중국인 제자들도 출입이 제한돼 있던 서재를 마음껏 출입하게 했다. 석 달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추사는 이 연행을 통해 당대의 거유巨儒들과 교유하며 경학·금석학·서화 등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중국을 넘어서고 우리 것을 아우르며 절대자유의 경지에 오른 추사 김정희의 예술세계를 만날 수 있는 전시.

응방강이 보낸 세 번째 편지

옹방강과 추사가 1810년 주고받은 필담서는 그들이 맺은 묵연墨緣의 첫 장을 확인하는 자료다. 1817년 옹방강이 추사에게 보낸 세 번째 편지가 처음 나왔다. “() 보내준 인삼은 매우 감사하며 노쇠한 몸이 이것에 의지해 지내고 있습니다.” 무려 3미터 길이에 빼곡히 써 내려간 편지글에 제자를 향한 스승의 신뢰와 사랑이 묻어난다.

추사는 당대에도 중국 문인 사이에서 인기를 누렸다. 청나라 학자 정조경(1785~1855)이 쓰고 그린 <문복도捫腹圖>를 보면 한 살 많은 정조경이 오히려 젊은이의 모습을 하고 노인 얼굴의 추사에게 예의를 갖춰 인사하고 있다. “완당 선생을 만나 뵙지 못했지만 문장과 학문을 오랫동안 사모해왔습니다. 그래서 이 그림을 그려 보내드립니다. 혹시 오류 없이 비슷하다고 가상해 하신다면 수염을 치켜들며 한바탕 웃으실 것입니다.”

중국을 넘어서고 우리 것을 아우르며 절대자유의 경지에 오른 추사 김정희의 예술세계를 만날 수 있는 전시.

추사가 70세에 쓴 마지막 글씨 <판전板殿>

“괴하지 않으면 서가 아니다”

일찍이 천재성을 인정받은 추사였지만 우리가 아는 추사체는 말년에 완성됐다. 서울서예박물관 이동국 큐레이터는 “추사가 대단한 것은 중국에서 영향을 받았지만 중국을 넘어섰기 때문”이라며 “중국 고대 문자부터 수천 년 이어져온 중국 서법을 모두 섭렵한 뒤 우리 전통까지 융합해 창조한 것이 추사체”라고 말한다.

글자 한 자, 필선 한 획이 꿈틀대고 도무지 한 사람의 글씨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변화무쌍하다. 추사 당대에도 “글씨를 왜 이상하게 쓰느냐”는 비판과 조롱이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추사는 “괴하지 않으면 서가 될 수 없다”고 응수했다. 30대의 추사가 옹방강의 영향을 받아 비후한 맛을 보인다면, 50대에는 칼날같이 날카로운 맛이 두드러진다. 8년간의 제주도 유배 후에는 “한 티끌도 군더더기를 용납하지 않는 지고의 경지”(최완수 간송미술관 한국민족미술연구소장)에 이른다. 추사 스스로 밝혔듯 “열 개의 벼루를 구멍 내고 붓 천 자루를 닳아 없앤” 노력의 산물이 바로 추사체다. 그런 의미에서 추사가 5~6세 때 쓴 <입춘대길立春大吉>과 70세에 쓴 마지막 글씨 <판전板殿>이 함께 걸려 눈길을 끈다.

중국을 넘어서고 우리 것을 아우르며 절대자유의 경지에 오른 추사 김정희의 예술세계를 만날 수 있는 전시.
중국을 넘어서고 우리 것을 아우르며 절대자유의 경지에 오른 추사 김정희의 예술세계를 만날 수 있는 전시.

파격적이고 자유로운 <유희삼매遊戱三昧>

추사는 현대미술의 시작

베이징 전시가 추사와 중국 석학들의 교류를 통해 ‘필묵공동체’로서의 동아시아를 강조했다면, 서울서예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이번 전시는 추사 글씨의 현대성에 방점을 찍는다. 전시장 말미에 조각가 김종영, 단색화가 윤형근 등 추사 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현대 작가들의 조각·회화·서예 작품을 함께 전시했다. 한국 현대 추상 조각의 선구자인 김종영은 추사의 ‘유희삼매遊戱三昧(예술이 극진한 경지에 이름)’를 평생의 화두로 삼았다. <유희삼매> 역시 <계산무진>처럼 글자 배치부터 파격적이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서서히 올라가다가 뚝 떨어지는 리듬, 비우고 채우는 공간 경영이 돋보인다. 이동국 큐레이터는 “김종영은 추사의 유희를 ‘모든 구속을 벗어난 절대자유’로 해석했다”며 “글자와 획을 해체해 재구성하고 공간을 처리한 파격에서 20세기 현대미술이 이미 시작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추사의 예술세계를 만끽할 수 있는 모처럼의 기회를 놓치지 마시길.

허윤희 조선일보 문화부 기자
문화재와 고미술을 담당하고 있다. 오래된 것을 낡지 않게 쓰려고 노력한다.

중국을 넘어서고 우리 것을 아우르며 절대자유의 경지에 오른 추사 김정희의 예술세계를 만날 수 있는 전시.

추사 김정희와 청조문인의 대화

코로나 19 감염병 위기경보가 최고 수준인 ‘심각’ 단계로 격상됨에 따라 본고에 언급된 <추사 김정희와 청조문인의 대화> 전시는 취소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관객분들의 너른 양해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