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벨칸토 오페라 시대를 대표하는 명작

콘서트 오페라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3.12(목) | 콘서트홀
가에타노 도니체티가 음악으로 그려낸 아름답지만 슬프고 처절한 사랑 이야기를 세계적인 소프라노 제시카 프랫의 노래로 만난다.
ⓒJeff_Busby_and_Victorian_Opera

가에타노 도니체티가 음악으로 그려낸 아름답지만 슬프고 처절한 사랑 이야기를 세계적인 소프라노 제시카 프랫의 노래로 만난다.

19세기 초 이탈리아를 지배한 오페라 스타일은 벨칸토Bel Canto였다. 직역하면 ‘아름다운 노래’가 되는 벨칸토는 인간의 목소리를 가장 아름다운 형태로 다듬어 조각 같은 세공미를 자랑하는 오페라였다. 이런 벨칸토 오페라 시대의 대작곡가로는 흔히 세 사람이 손꼽힌다. 바로 조아키노 로시니, 빈첸초 벨리니 그리고 가에타노 도니체티다. 이들은 지금도 밀라노 라스칼라극장의 로비에 대리석 기념상이 우뚝 서 있을 정도로 오페라의 본고장에서도 인정받는 대작곡가들이다. 특히 로시니는 <세비야의 이발사> 등 코믹한 희극 오페라에 장기를 보였고, 남부 시칠리아에서 태어난 벨리니는 <노르마>와 <청교도> 등 우아하고 장중한 비극에서 최고의 작품을 남겼다.

장대하고 처절한 비극 오페라

가에타노 도니체티는 희비극 모두에서 걸작을 남겼다. 특히 감정의 마지막 한 자락까지 쥐어짜내듯 표현하는 특유의 절절한 음악이 관객들에게 커다란 감동을 주었다. 그중에서 비극 <람메르무어의 루치아Lucia di Lammermoor>는 벨칸토 오페라 시대 전체를 대표하는 명작으로 손꼽힌다.

이 새로운 신작 비극을 구상하는 단계에서 도니체티가 대본가였던 살바도레 캄마라노에게 부탁한 것은 단 두 마디였다고 한다. “볼리오 아모레, 에 아모레 비올렌토Voglio amore, e amor violento!(사랑 이야기를, 그것도 처절한 사랑 이야기를 써달라!)” 캄마라노는 곧 스코틀랜드의 대문호 월터 스콧의 소설 「래미무어의 신부The Bride of Lammermoor」에 주목한다. 소설은 원수 집안 남녀 간의 금단의 사랑 이야기를 다루었으나, 가령 이탈리아 베로나를 배경으로 한 <로미오와 줄리엣>류의 달콤한 스토리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어둡고 절망적인 내용으로 가득 차 있었다.

루치아와 에드가르도는 서로 사랑하지만 두 사람의 가문은 수 대째 폭력으로 얼룩진 원수지간이다. 그럼에도 에드가르도는 루치아와의 결혼을 맹세하고 외교 임무차 잠시 프랑스로 떠난다. 그새 루치아의 오빠 엔리코가 에드가르도의 편지를 조작하고 여동생을 반쯤 협박하여 둘 사이를 떼어놓는다. 엔리코는 날로 기울어져가는 가세를 만회하기 위해 여동생을 유력자 집안의 남자와 정략결혼 시키려고 한 것이다. 마침내 루치아의 결혼식 날, 에드가르도가 식장에 난입한다.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며 반지까지 교환한 여자가 다른 남자와 결혼한다고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그는 루치아에게 따져 묻는다. “이게 네가 원한 결혼인가? 혼약의 서명은 네 스스로 한 것인가?” 이미 충격으로 혼이 나간 루치아는 울먹울먹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다가 “네”라며 힘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결국 에드가르도는 순식간에, 그리고 처절히 무너져 내린다.

오페라 역사상 가장 위대한 ‘광란의 아리아’

루치아는 연인의 절규 앞에서 자신이 오빠 엔리코에게 완전히 속았음을 깨닫는다. 에드가르도가 보낸 절교의 편지도, 다른 남자와의 결혼이 가문을 위하는 길이라는 오빠의 이야기도 믿었는데 모두 거짓이었던 것이다. 루치아는 이내 허물어진다. 가슴 설레야 할 신혼 첫날밤에 착란 증세에 빠져 남편 아르투로를 칼로 찔러 살해하고, 완전히 정신을 잃은 채 노래하다 죽어간다. 너무나도 유명한 ‘광란의 아리아’가 바로 여기서 등장한다. 

에드가르도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내 마음에서 들리는 듯해!
아, 그의 목소리가 가슴으로 스며드는구나!
에드가르도! 나는 당신에게 돌아갈 거예요.
아! 에드가르도, 에드가르도!
(Il dolce suono mi colpi di sua voce!
Ah, quella voce m’e qui nel cor discesa!
Edgardo! io ti son resa, Edgardo, mio!)

배우 박정자는 카리스마의 대명사다. 강렬한 눈빛과 중저음의 목소리가 어우러진 그의 연기를 보면 누구라도 반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광란의 아리아’, 소프라노 제시카 프랫

무려 20여 분에 걸쳐 계속되는 이 장대하고도 기념비적인 콜로라투라 소프라노Coloratura Soprano (빠르게 굴러가듯이 장식적이며 기교적인 노래를 부르는 데 적합한 소프라노) 아리아는 벨칸토 시대의 오페라 미학을 규정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인간 목소리의 아름다움을 극한까지 추구했던 당시의 오페라는 ‘피를 토할 때까지 아름답게 노래하다 죽어라’라는 탐미적인 가창 명제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결국 벨칸토 오페라는 프리마돈나prima donna, 즉 여자 주인공의 비극적인 운명에 특별히 주목하게 된다. 비련의 상황 속으로 이끌려 간 여인은 곧 극한의 절망과 고통 속에서 꾀꼬리처럼 아름답게 노래하다 죽어갔다.

이 때문에 여주인공에겐 초인적인 기교와 엄청난 난이도의 노래 실력이 필수적으로 요구되었다. 그래서 한동안 벨칸토 오페라는 ‘서커스적인 성악 스킬의 전시장’이라는 비난을 피하지 못했다. 가수들은 배역이 지닌 슬픈 운명과 비극적 상황에 대한 깊은 이해 대신 목소리 자랑에만 열중했던 것이다. 그런 경향을 단번에 뒤바꾼 것이 ‘세기의 디바’라 불리는 마리아 칼라스다. 칼라스는 ‘광란의 아리아’ 등에서 한 시대의 오페라 역사를 새로 쓰는 위대한 해석을 들려주었다. 이전 가수들이 플루트 등의 악기와 경쟁하며 꾀꼬리처럼 예쁘장하게 노래하기만 했던 것을, 칼라스는 노래 자체에 짙은 인간적 감정의 굴곡을 투사한 것이다. 그녀의 이 기념비적인 모노드라마 연기 이후 도니제티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각은 완전히 바뀌게 된다. 그가 쓴 오페라가 그저 기교적인 목소리의 전시장이 아니라 진정 위대한 휴먼 드라마를 담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된 것이다. 이제 <람메르무어의 루치아>는 역사상 가장 처절하고 위대한 러브 스토리의 대명사가 되었다.

세계적 성악가들과의 만남

<람메르무어의 루치아>는 이탈리아 벨칸토 오페라의 최고 명작인 동시에 배역별로 최고 수준의 명가수를 요구하는 대단히 까다로운 작품이다. 밀라노의 라스칼라극장, 뉴욕의 메트로폴리탄오페라극장 등 세계적인 오페라하우스에서도 캐스팅에 가장 신경을 쓸 정도로 예술적 난이도가 높기로 유명하다. 오는 3월 12일 공연을 앞둔 예술의전당 콘서트오페라에는 소프라노, 테너, 바리톤과 베이스 등 주요 배역에 모두 세계적인 성악가들이 출연하면서 음악적 완성도에 대한 기대를 한껏 높여주고 있다.

가에타노 도니체티가 음악으로 그려낸 아름답지만 슬프고 처절한 사랑 이야기를 세계적인 소프라노 제시카 프랫의 노래로 만난다.

에드가르도 역을 맡은 맑은 미성의 테너 정호윤

가에타노 도니체티가 음악으로 그려낸 아름답지만 슬프고 처절한 사랑 이야기를 세계적인 소프라노 제시카 프랫의 노래로 만난다.

이번 공연에서는 지휘자 에벨리노 피도의 감성과 리듬 감각에 주목해도 좋다.

루치아 역의 제시카 프랫은 바로 이 배역으로 세계적인 슈퍼스타가 된 소프라노다. 밀라노 라스칼라극장, 뉴욕 메트로폴리탄오페라극장, 비엔나 국립오페라극장, 런던과 베를린 등지에서의 공연 때마다 모두 격찬을 받았다. 제시카 프랫이야말로 탄탄하고 무게감 넘치는 음색과 정교한 콜로라투라 기교가 잘 어우러진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콜로라투라 소프라노다. 에드가르도 역의 정호윤은 맑은 미성과 쭉쭉 뻗어 나가는 청량감 넘치는 발성으로 유명한 테너다. 비엔나 국립오페라극장 전속단원으로 활약하며 베르디의 <리골레토> 등에서 세계적인 역량을 선보였다. 묵직하면서도 부드러운 저음과 폭발적인 표현력이 어우러진 엔리코 역의 바리톤 재커리 넬슨, 자애로운 라이몬도 신부 역을 맡은 카리스마적인 베이스 전승현도 시선을 모은다.

벨칸토 오페라 지휘에 있어 세계 최고로 손꼽히는 마에스트로 에벨리노 피도와의 만남은 너무나 반갑다. 벨칸토 오페라 레퍼토리는 일견 손쉽게 보이지만 이탈리아 지휘자들만의 독특한 감성과 리듬 감각이 매우 중요하다. 이미 세계 최고의 오페라하우스에서 빛나는 음악을 자아냈던 그의 지휘봉을 반드시 주목해야 할 것이다.

INTERVIEW
소프라노 제시카 프랫(루치아 역)

가에타노 도니체티가 음악으로 그려낸 아름답지만 슬프고 처절한 사랑 이야기를 세계적인 소프라노 제시카 프랫의 노래로 만난다.

ⓒAlessandro Moggi

Q. 그간 <람메르무어의 루치아>로 전 세계 무대에서 큰 성공을 거두어왔다. 당신에게는 유독 큰 의미가 있는 작품일 듯하다.

A. 유럽 데뷔 무대와 밀라노 라스칼라극장에서의 첫 공연이 모두 <람메르무어의 루치아>였다. 지금껏 30개 이상의 프로덕션에서 100회 넘게 공연했다. 한국 무대에서 이 작품으로 데뷔하게 되어 무척 기쁘다.

Q. 루치아는 고난도 콜로라투라 기교와 작품에 대한 극적인 해석을 동시에 요구하는 배역이다. 특히 ‘광란의 장면’은 오페라 역사상 가장 소화하기 힘든 신으로 손꼽힌다. 당신의 루치아는 어디에 초점을 맞추고 있나?

A. 작곡가 도니체티는 ‘광란의 장면’을 비롯한 오페라 전체를 극도로 섬세한 음악 언어로 채워놓았다. 루치아는 너무도 처절한 비극적 상황 속에 놓인 여인이지만 그녀의 모든 감정과 슬픔은 도니체티의 음악 속에 이미 다 녹아 있다. 이 위대한 음악이 지닌 잠재력을 남김없이 표현해내는 것이 목표다.

Q. 오페라 가수가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

A. 테너였던 아버지 덕분이다. 아버지는 나의 첫 음악 선생님이었다. 트럼펫을 불며 음악에 본격적으로 흥미를 붙이기 시작할 때 아버지의 가르침이 컸다. 지금도 아버지는 나의 스승이자 가장 절친한 조언자다.

Q. 소프라노로서 롤 모델로 여기는 프리마돈나가 있는지?

A. 몽세라 카바예Montserrat Caballe, 마리엘라 데비아Mariella Devia, 아닉 마시스Annick Massis 등의 노래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 조안 서덜랜드Joan Sutherland와 레나타 스코토Renata Scotto에게는 마스터클래스를 통해 큰 가르침을 받았고, 현재는 렐라 쿠벨리Lella Cuberli에게 전문적인 코칭을 받으며 목소리 컨디션을 조절하고 있다.

[예습용 영상&음반]
예술의전당 콘서트 오페라 <람메르무어의 루치아>를 만나기 전,
꼭 한 번 들어봐야 할 오페라 속 최고의 아리아

앞서 소개한 저 유명한 ‘광란의 아리아’ 외에도 <람메르무어의 루치아>에는 수많은 명곡이 아리아와 듀엣, 다중 앙상블의 형태로 연주된다.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

제1막 루치아의 아리아 ‘주위는 침묵에 잠기고Regnava nel silenzio

루치아가 연인 에드가르도를 기다리며 노래하는 아리아. 숲속 우물가에 얽힌 비련의 러브 스토리를 노래하는 음울한 어조의 카바티나에서, 곧 연인을 기다리는 밝고 아름다운 카발레타로 전환된다.

테너 조셉 칼레야, 베이스 연광철 외

제2막 6중창 ‘이 순간 그 누가 나를 가로막는가?Chi mi frena in tal momento?

루치아의 결혼식 당일. 프랑스로 떠났다 돌아온 에드가르도가 식장으로 난입한다. 전율로 얼어붙은 모두가 각자의 복잡한 심정을 장대한 6중창 앙상블로 노래한다.

테너 파볼 브레슬릭

제3막 에드가르도의 아리아 ‘내 조상의 무덤이여Tombe degli avi miei

루치아의 결혼으로 절망에 빠진 에드가르도는 엔리코에게 결투를 신청하고는 조상들의 무덤가에서 그를 기다린다. 깨어진 사랑에 대한 처절한 토로로 가득 찬 극적인 테너 아리아.

가에타노 도니체티가 음악으로 그려낸 아름답지만 슬프고 처절한 사랑 이야기를 세계적인 소프라노 제시카 프랫의 노래로 만난다.

「서덜랜드 – 파바로티 레코딩」(DECCA)

카라얀이 지휘봉을 잡고 마리아 칼라스가 루치아를 연기한 1955년 베를린 실황 공연 레코딩은 전설적인 음반이지만 음질이 좋지 않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존재한다. 대신 스테레오 시절의 최고 명반으로 손꼽히는 조안 서덜랜드와 루치아노 파바로티 커플의 음반을 소개한다. 서덜랜드는 특유의 폭넓고 기품 넘치는 음색에 초절기교 또한 완벽하다. 회색빛 벨벳이 드리워진 듯한 그녀의 목소리는 전설 그 자체이며, 1970년대 초 가장 빛나던 시절의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노래하는 최고의 에드가르도 또한 잊을 수 없다. 리처드 보닝의 지휘는 평범한 편이나 두 주역의 빛나는 음성과 완벽한 가창만으로도 벨칸토 오페라가 주는 감동의 극한을 느끼기에 모자람이 없다.

가에타노 도니체티가 음악으로 그려낸 아름답지만 슬프고 처절한 사랑 이야기를 세계적인 소프라노 제시카 프랫의 노래로 만난다.

「뉴욕 메트로폴리탄오페라 공연」(DG, 한글자막)

우리 시대의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가 루치아를 맡아 비련의 여인을 실감나게 연기했다. 그녀의 루치아는 초절기교적인 정교함보다는 살아 있는 드라마에 좀 더 집중하는 모습이다. 상대역인 에드가르도를 노래한 표트르 베찰라의 신선한 노래와 연기도 설득력이 있다. 네트렙코는 ‘광란의 아리아’에서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한다. 특유의 아름답고 로맨틱한 음색을 십분 활용한 비극적인 표현력이 가슴을 울린다. 특히 이 장면에서 메트로폴리탄오페라는 플루트 대신 특별히 제작된 글라스 하모니카Glass Harmonica로 루치아의 불안한 심리를 표현한다. 이는 작곡가 도니체티가 나폴리 산카를로극장 초연 당시에 의도했으나 끝내 실현하지는 못했던 설정을 부활시킨 것이다. 이번 예술의전당 공연에서도 글라스 하모니카가 주는 생생하고 신비로운 울림을 만날 수 있다. 연출을 맡은 매리 짐머만은 보다 현대적이고 영화적인 연출로 스코틀랜드의 음울한 자연환경을 무대 위에서 극적으로 재현해냈다. 전체적으로 날카롭고 처절한 맛은 조금 떨어지지만 극적인 긴장감이 넘쳐흐르는 현대의 명연이다.

황지원 오페라 평론가
황지원은 예술이 주는 깊고 생생한 감동을 찾아 매년 전 세계 공연장을 순례하는 현장 탐험형 오페라 평론가다. 경향 각지의 문화예술기관에서 클래식 음악과 오페라 관련 강의도 하고 있다.

가에타노 도니체티가 음악으로 그려낸 아름답지만 슬프고 처절한 사랑 이야기를 세계적인 소프라노 제시카 프랫의 노래로 만난다.

월드프리미어 XI
예술의전당 콘서트 오페라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코로나 19 감염병 위기경보가 최고 수준인 ‘심각’ 단계로 격상됨에 따라 본고에 언급된 3월 12일 예술의전당 콘서트 오페라 <람메르무어의 루치아>는 취소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관객분들의 너른 양해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