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ME TALK

억눌린 영혼을 위한 녹색 스프레이

<모네에서 세잔까지 : 예루살렘 이스라엘 박물관 인상파와 후기 인상파 걸작>展
1.17(금)~4.19(일) | 한가람미술관

인상주의 화가들은 오늘의 우리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부드럽고 유연한 태도와 넉넉한 시선을 선물한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오늘의 우리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부드럽고 유연한 태도와 넉넉한 시선을 선물한다.

차일드 하삼, <여름 햇빛(숄스 섬)>, 1892년, 51.4×61.5 cm, 캔버스에 유채 ©The Israel Museum, Jerusalem

귀가 먼 베토벤이 불후의 명곡을 작곡한 것처럼 백내장, 근시, 황색증 등 시각장애를 겪은 인상주의 화가들 중 아주 매력적인 그림을 그린 예가 많다. 우리는 모네, 세잔, 고갱, 르누아르, 피사로를 통해 인생의 난관을 대하는 그들의 유연하고 성숙한 태도를 배울 수 있다. 처음 인상주의 화가들은 ‘길가의 돌을 주워 들고 좋아하며 보석이라고 착각하는’ 정신병자 취급을 받았다. 완성되지도 않은 그림을 완성되었다고 착각한 채 여인의 피부를 푸르뎅뎅하게 칠해놓고 만족스러워하는 엉터리 화가들, 그들이 바로 인상주의 화가들이었다. 그러나 대중의 인식과 취향이 바뀐 오늘날, 인상주의는 추상화와 대조적으로 누구나 감상하기 편한,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회화 양식이 되었다. 갖은 혹평을 꿋꿋하게 견뎌내고 자신들의 미학을 끝까지 끌고 나간 인상주의자들은 후대 예술가들에게 예술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는 것인지 모범적으로 보여준 것은 물론, 예술과 직접 연관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가르쳐준 셈이다.

인상주의가 건네는 부드러운 말투

인상주의는 보드랍고, 유순하며 융통성 있는 유혹이다. 모네를 비롯한 시슬레, 세잔, 르누아르, 고갱의 인상주의가 그려내는 부드럽고 유연한 형체는 삶을 대하는 넉넉한 태도를 보여준다. 특정한 것만이 진리라고 주장하며 절대적으로 행해야만 한다는 합리주의, 계몽주의는 독재적인 명령에 가깝고 인생에 대한 부정적 평가와 더불어 불만족과 불행감을 조장할 수 있다. 반면 인상주의 회화는 ‘인생은 이것이며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쩌렁쩌렁한 외침이 아니라 ‘아무래도 이것은 이런 것 같다’는 잔잔한 은유법으로 돌려 말한다. 그림의 목소리가 부담 없이 우리 가슴속으로 자연스럽게 흘러들어와 공기처럼 스며든다. 사물을 분절된 선분이나 심지어 점으로 형성하는 인상주의는 자연으로부터 어느 정도 해방된 형체 표현의 자유를 구사한다. 따라서 인상주의 회화를 감상하는 관객도 마찬가지로 삶의 억압으로부터의 해방감과 자유를 느낄 수 있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오늘의 우리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부드럽고 유연한 태도와 넉넉한 시선을 선물한다.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꽃병의 장미>, 1880년, 58.5×73.5cm, 캔버스에 유채 ⓒThe Israel Museum, Jerusalem

나 자신으로의 회귀

인상Impression이란 무엇인가. 바로 지금 여기 눈앞에서 벌어지는 사건으로 인한 내 영혼의 충격과 체험이다. 빛이 던져져 생기는 명암, 공기가 흐르며 내뿜는 온기와 냉기, 생기고 사라지는 향기, 인파, 경치들··· 생성 소멸과 교차와 만남의 가물거림··· 서양철학과 문화가 플라톤부터 현재까지 단단한 그리스 신전 기둥과 같은 이성과 영원불변성을 추구했다면 인상주의는 지금 여기에서 시시각각으로 부서져 소멸되는 동시에 또한 생겨나는 순간들에 가치를 두고 집중했다. 너무도 미세하고 정교하여 잡으려고 손을 뻗는 순간 흔적 없이 사라지는 뿌연 연기 같은 존재, 인상주의는 바로 그것을 화폭에 담으려고 시도했던 것이다. 인상주의는 지상 위의 감각 세계에 머물며 한 발짝 한 발짝 세상 존재들의 발자국과 함께 동행하고 그 존재들의 부서지는 파편들을 어루만지고 위로한다. 더불어 허구적인 이상보다 감각적 현실로 눈을 돌려 각 개인의 주관과 실존을 존중한다.

동시대 철학자 니체는 이데아가 아니라 생성 소멸의 세계가 진정한 세계임을 주장하며 그런 의미에서 생성의 무죄를 선언했다. 그는 영원한 이데아는 오히려 생명 없는 껍데기, 미라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펄떡거리며 생기고 없어지는 바로 지금 여기의 감각 세계가 진실한 세계다. 너와 내가 다르게 볼 수 있으며 위·아래·옆에서 본 그 모든 차이가 진리다. 나만이 느끼는 인상도 그 자체로 진리의 파편이며 진리 그 자체다.” 모네와 르누아르 작품을 바라보는 관객인 ‘나’는 현실 세계로, 그리고 나 자신에게로 되돌아오게 된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오늘의 우리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부드럽고 유연한 태도와 넉넉한 시선을 선물한다.

폴 세잔, <강가의 시골 저택>, 1890년, 81×65cm, 캔버스에 유채 ⓒThe Israel Museum, Jerusalem

삶에 억눌린 영혼을 위한 녹색 스프레이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모네에서 세잔까지: 예루살렘 이스라엘 박물관 인상파와 후기 인상파 걸작展>의 전시장을 거닐면 녹색의 나무와 숲, 평원 속으로 순식간에 빨려 들어간다. 미술치료 이전에 그윽하고 시원한 숲 치료가 관객을 기다리고 있다. 야외에서 자주 작품의 대상을 포착한 인상주의 회화에서 녹색은 빼놓을 수 없는 요소로, 작품에 평온히 몰입하게 하며 잠시나마 관객에게 해탈의 순간을 선물한다. “바깥으로 퍼져 나가는 원심력의 노랑과 안으로 수줍게 파고 들어가는 구심적인 파랑이 만난 자족함의 색깔, 배가 불러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어 드러누워 있는 황소.” 추상화가 칸딘스키는 녹색을 그렇게 표현했다. 초록은 인간의 마음을 가라앉히고 영혼에 평화를 주는 색이다. 흔히 싸움과 실랑이가 벌어지곤 하는 카지노의 바닥 색깔이 초록인 이유, 강 위의 다리를 초록색으로 칠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초록이 평온하다 못해 너무 지루한 나머지 화가 몬드리안(그는 인상주의자가 아니었다)은 자신의 방에서 정원이 보이지 않도록 커튼을 치고 살았다고 한다. 인상주의의 초록은 관객들에게 긍정적 뇌파를 발산하도록 하는 생명의 스프레이를 흩뿌린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오늘의 우리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부드럽고 유연한 태도와 넉넉한 시선을 선물한다.

카미유 피사로, <아침, 햇빛 풍경, 에라니>, 1899년, 66×81.7cm, 캔버스에 유채 ⓒThe Israel Museum, Jerusalem

우리 존재들 간의 간격

르누아르, 모네, 고갱과 세잔 등의 그림은 존재의 지금과 여기, 시시각각 부서져 되돌아오지 않는 희미한 존재의 파편을 모아 한 뭉치씩 그 존재의 지나간 흔적을 재현하고 있다. 순간이 모여 큰 우주가 되는 것이다. 시슬레, 부댕, 모네의 그림은 흩어지는 존재의 조각들, 존재와 존재 간의 안타까운 헤어짐과 불연속을 액자라는 가슴속에 쓸어 담으며 아쉬움, 서먹함, 아른거리는 그리움, 외로움을 끌어안고 있다. 르누아르, 모네, 시슬레의 붓 터치는 솜사탕처럼 아련하기만 하다. 우리가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것은 본래 인간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고독과 존재의 단절성 때문이다. 인간은 모두 자족적이고 독립적인 존재, 홀로 왔다 홀로 가는 그런 존재, 자기만의 모나드Monad, 단일체다. 그래서 인간은 늘 누군가를 만나고 대화하고 접촉하며 끊임없이 서로 연결되려고 한다. 인상주의자들이 조각조각 긋는 선분들, 가루 같은 점들은 존재의 외로움과 아픔, 단적인 불연속성을 대변하는 듯하다. 점과 점 사이, 선분과 선분 사이에 이어질 듯 끊어질 듯한 아스라한 공간과 틈새는 만나고 싶은 존재를 만나지 못한 인간들의 안타까움의 상징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런 작품들 속에서 관객들은 공감을 느끼며 자신을 만나고 자신의 본질을 다시 깨닫게 될 것이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오늘의 우리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부드럽고 유연한 태도와 넉넉한 시선을 선물한다.

폴 시냑, <예인선, 사모아의 운하>, 1901년, 82×66cm, 캔버스에 유채 ©The Israel Museum, Jerusalem

우울로부터의 해방

마음이 우울한 사람들의 그림에는 호수와 강, 바다 같은 물이 흐르곤 한다. 우울한 사람에게 수채화를 그리게 하는 것은 우울감을 더욱 심화시킬 위험이 있다. <수련> 연작을 비롯한 모네의 그림에는 물이 흥건하게 넘쳐흐른다. 빠질 듯 아슬아슬한 깊이의 물이지만 모네의 그림 속에는 우리를 구원해주는 꽃들이 둥둥 떠다닌다. 마치 물을 노래한 드뷔시와 라벨의 음악이 들리는 듯하다. 우울할 틈도 없고 무서워할 사이도 없이 우리의 시선과 가슴은 꽃 위에 머물며 환희를 느끼고 위로를 건진다. 그림을 바라보던 울적한 마음이 물에서 꽃으로 헤엄쳐 건너갈 것이다. 그림은 우리가 사는 세계와는 분리된 별천지다. 어떤 그림이든 바라보는 순간 세상적인 근심과 불안을 잠시라도 잊게 만든다.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이 순간을 가리켜 “잠시 일어나는 해탈”이라고 불렀다. 예술적 천재가 세계를 비추는 맑은 거울이 되었듯이 우리의 영혼도 그렇게 맑아지는 것이다. 모네의 그림 속에 담긴 그의 지금과 여기, 모네 앞에 존재했던 아름다운 초록빛 현재가 우리를 끌어당긴다.

희망이 옅어지고 자신감이 떨어져 세상을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자기와 세상과 미래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 때문에 머리 위에 먹구름 한 점이 떠날 줄을 모른다면, 자리를 훌훌 털고 일어나 예술의전당으로의 산책을 권한다. 잠시 가족을 떠나 있어도 좋다. 예술의전당에 가는 날은 ‘나’를 위한 특별한 하루가 될 것이므로.

인상주의 화가들은 오늘의 우리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부드럽고 유연한 태도와 넉넉한 시선을 선물한다.

클로드 모네, <수련 연못>, 1907년, 101.5×72cm, 캔버스에 유채 ©The Israel Museum Jerusalem

조정옥 뮌헨대학교 철학박사, 미술치료사
저서 『한 권으로 보는 예술철학 예술치료 이야기』

모네에서 세잔까지: 예루살렘 이스라엘 박물관 인상파와 후기 인상파 걸작展

기간 2020.01.17(금) ~ 2020.04.19(일)
시간 10:00-19:00 (입장마감 18:00) ※ 매주 월요일 휴관
장소 한가람미술관 5-6전시실
관람등급 전체관람
장르 전시
가격 일반 15,000원 / 청소년(만13-18세) 12,000원 / 어린이(36개월-만12세) 10,000원
주최 예술의전당, 예루살렘 이스라엘 박물관, (주)컬쳐앤아이리더스
주관 (주)컬쳐앤아이리더스
문의 02-6273-4242
후원/협찬 미디어후원 (주)카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