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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적 오페라의 매력을 만나다

<제19회 한국소극장오페라축제>
3.27(금)~4.12(일) | 자유소극장

1600년경 피렌체의 귀족 바르디Bardi 공작의 ‘카메라타Camerata, 바르디가(家)에 모여 고대 그리스 연극을 모범으로 새로운 오페라 탄생에 기여한 예술가 집단’에서 태어난 오페라는 오랜 시간 귀족과 지배계급이 향유하는 예술로서 존재해왔다. 이런 오페라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은 프랑스대혁명 이후, 강력한 절대왕정 시대가 무너지고 근대사회로 진입하면서부터였다. 19세기 초반 새롭게 등장한 부르주아 계급과 도시의 중산층은 비교적 이해가 쉽고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여흥거리로 오페라를 원했다. 이후 오늘날까지 오페라는 다양한 형태로 발전해왔다.

지배계급의 예술에서 진화하는 예술로

오페라의 역사를 약 400년으로 생각할 때 처음 200년은 귀족의 예술이었고 그 후 200년은 소비자의 기호와 상황에 맞춰 진화해온 예술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근대도시 파리에서는 파리의 오페레타Operetta로, 영국에서는 뮤지컬 플레이로, 독일에서는 바그너의 무지크드라마Musikdrama로, 비엔나에서는 화려한 왈츠를 동반한 비엔나 오페레타로 거듭났다. 그리고 오페라는 미국으로 건너가 풍부한 볼거리를 갖춘 뮤지컬로 재탄생했다. 이 밖에도 크고 작은 변화를 거치면서 지역과 언어에 따라 각기 다른 모습으로 발전해온 것이 현재의 오페라인 것이다.

그렇다면 2020년의 오페라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그것도 탄생지인 유럽과는 멀리 떨어진 동아시아에서 말이다. 답은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오페라는 진화하는 예술’이라는 관점에 있을 것 같다. 우리나라에 서양음악이 도입된 이후 150여 년 동안 많은 음악적 성취를 이뤘지만 그중에서도 오페라는 특별한 영역에 속한다. 음악과 드라마가 결합한 오페라는 보편적 공용어인 음악의 특징에서 조금 벗어난다. 선율만으로 소통할 수 있는 기악곡과는 달리 드라마를 기반으로 하는 음악이기 때문에 오페라는 언어와 작품이 가진 독자적 감성에 대한 이해가 우선적이다. 오페라가 종합적인 예술이자 당대 문화의 총체라고 불리는 이유도 이런 부분에서 기인한다.

21세기 대한민국의 오페라인들은 이런 소극장 오페라를 모아 페스티벌을 개최하고 있다.

세종오페라단의 <여자는 다 그래> 포스터.

70년 역사의 대한민국 오페라

우리나라에서 오페라가 처음 공연된 지도 70년이 넘었다. 1948년 서울 시공관 무대에 베르디 오페라 <춘희La Traviata>가 오르고 2년 뒤 1950년에는 최초의 한국 오페라라고 알려진 현제명 작곡의 <춘향전>이 공연되었다. <춘향전>은 서양의 종합예술을 우리 것으로 실험한 초창기 작업이었다. 사실 <춘향전>을 서양의 오페라와 비교해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한국인에게 가장 익숙한 소재로 오페라를 만들었다는 사실은 당시 음악인들이 음악극으로서 이 장르의 특성을 파악하고 국내 관객에게 적합한 오페라에 대한 고민을 이미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70년 전에 출발한 고민과 실험은 여전히 현재 진형형이다. 흔히들 ‘창작 오페라’라고 부르는 현대 한국 오페라는 그동안 150여 편이 넘게 만들어졌고 서구의 오페라를 무대에 올릴 때도 객석과 최대한 효과적으로 소통할 방법을 꾸준히 찾고 있다. 그 방법 중 하나가 소극장 오페라다. 오페라의 원형은 본래 소극장 오페라에 가까웠다고 하지만 대규모 오페라극장에서 오페라를 공연할 때 발생하는 부담을 줄이고 관객들과 보다 가까운 거리에서 가볍게 만날 수 있는 소극장 오페라는 한국적 특징을 담아 진화한 오페라의 형태 중 하나다.

다채로운 개성과 빛깔을 지닌 다섯 개의 선정작

21세기 대한민국의 오페라인들은 이런 소극장 오페라를 모아 페스티벌을 개최하고 있다. 3월 27일부터 4월 12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열리는 <제19회 한국소극장오페라축제>가 그것이다. <한국소극장오페라축제>는 IMF 직후인 1999년 국립극장에서 처음 시작됐고, 올해로 19회를 맞이한다. 이번에는 경상오페라단, 더뮤즈오페라단, 라벨라오페라단, 세종오페라단, 왕경오페라단이 선정돼 소극장 오페라의 특성을 살리면서 각자의 개성을 드러낸 다채로운 작품들을 선보일 예정이다.

21세기 대한민국의 오페라인들은 이런 소극장 오페라를 모아 페스티벌을 개최하고 있다.

왕경오페라단의 <명랑선화> 포스터.

이번 페스티벌의 특징 중 하나는 다섯 개 오페라단의 작품이 번갈아 공연된다는 점이다. 대극장에서 공연되는 오페라페스티벌의 경우, 무대장치를 세우고 준비하는 시간과 과정이 복잡하기 때문에 한 작품이 끝난 뒤 일정 시간이 지나야 다른 작품을 공연할 수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모든 참여 작품들이 공동의 무대를 사용하는 대신 작은 무대장치나 소도구로 변화를 주기로 하면서 축제 기간 동안 매일 다른 작품을 무대에 올릴 수 있게 됐다. 각 단체마다 평균 4회의 공연을 하지만 모든 작품이 교대로 공연되기 때문에 관객 입장에서는 선택의 폭이 더욱 넓어진 셈이다.

한국적인 배경과 소재를 가져오다

개막 첫날 공연되는 세종오페라단의 <여자는 다 그래>는 잘 알려진 모차르트의 오페라 <코지 판 투테Cosi fan tutte>의 배경을 한국으로 설정한 작품이다. 원작이 있는 오페라의 음악은 그대로 두고 배경과 대사를 우리 상황에 알맞도록 번역해 공연하는 오페라를 번안 오페라라고 부른다. 이 작품은 대사 부분인 ‘레치타티보Recitativo, 오페라에서 대사를 말하듯이 노래하는 형식’는 우리말 가사로, 아리아는 원작 그대로 노래하는 번안 오페라의 형식을 일부 따르고 있다. 이처럼 새롭고 다양한 형식적 모색을 비교적 부담 없이 시도할 수 있다는 것도 소극장 오페라의 큰 장점 중 하나다. <여자는 다 그래>에서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젊은이들의 사랑 이야기를 모차르트의 우아하고 관능적인 선율과 함께 감상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21세기 대한민국의 오페라인들은 이런 소극장 오페라를 모아 페스티벌을 개최하고 있다.

라벨라오페라단의 <푸푸아일랜드> 포스터.

이어지는 왕경오페라단의 오페라 <명랑선화>는 우리의 전통 소재를 사용한 최현석 작곡의 창작 오페라다. <명랑선화>는 경주와 신라의 향가를 소재로 한 네 편의 창작 오페라 시리즈 중 두 번째 작품이다. 2015년 오페라 <죽지랑>으로 시작한 이 시리즈는 2016년 <명랑선화>, 2017년 <처용’s 처> 그리고 2018년 <마담 수로>까지 네 편 모두 성공적으로 공연됐다. 신라의 향가를 소재로 한 것도 독특하지만 이들 작품이 모두 코믹 오페라인 ‘오페라부파Opera Buffa’라는 점이 더 흥미롭다. 작곡가 최현석은 “한국적 정서를 담되, 관객이 재미있어하고 무대와 소통할 수 있는 오페라를 창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번 작품은 전체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니 부분보다 전체적 맥락에서 오페라를 감상해주시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어린이 오페라, 희극 오페라, 정통 오페라의 매력 속으로

개막 셋째 날 낮 시간대인 오후 2시에 공연되는 작품은 라벨라오페라단의 <푸푸아일랜드>다. 이 오페라는 이번 페스티벌에서 최초로 선보이는 초연 작품으로 만 4세부터 입장이 가능한 체험형 키즈 오페라다. 도니체티의 오페라 <사랑의 묘약L’elisir d’amor>을 서순정 작곡가가 어린이 오페라로 새롭게 재창조했다. 유니콘들이 살고 있는 나라에서 벌어지는 신비한 모험을 <사랑의 묘약>에 접목시켜 친숙한 선율과 새로운 이야기를 선보일 예정이다. 또한 공연 도중 실제로 비눗방울을 객석으로 날리는 등 어린이들의 오감을 자극하는 참신한 방식의 오페라를 공연한다고 하니 어린이들에게는 흥미롭고 소중한 추억으로 남을 듯하다. 해외 오페라극장의 경우, 교육용 어린이 오페라를 많이 만들고 적극적으로 관람을 유도해 어린이가 성인이 된 뒤에도 자연스럽게 극장으로 유입되도록 하고 있다. 앞으로 우리나라도 <푸푸아일랜드> 같은 교육용 어린이 오페라를 많이 제작한다면 오페라에 대한 진입장벽을 낮추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21세기 대한민국의 오페라인들은 이런 소극장 오페라를 모아 페스티벌을 개최하고 있다.

더뮤즈오페라단의 <버섯피자> 포스터.

<푸푸아일랜드>와 같은 날 시작하는 더뮤즈오페라단의 <버섯피자>는 20세기 최고의 희극 오페라 대가로 불리는 미국 작곡가 세이무어 바랍Seymour Barab의 블랙코미디다. 독이 든 버섯피자를 소재로 등장인물 모두가 서로 죽이려 하는 치정극이지만 유머러스한 요소가 많아 관객들의 시선을 붙잡는다. 19세기 이탈리아였던 원작의 배경을 이번 작품에서는 현대로 옮겨 역할이나 설정, 의상 등에 많은 변화를 주면서 대사와 아리아를 한국어로 공연하는 번안 오페라로 선보인다. <제16회 대구국제오페라축제>에서 소극장 오페라로 공연해 많은 호평을 받는 등 오락성이 검증된 작품이기도 하다.

마지막 오페라는 경상오페라단이 공연하는 도니체티의 희극 오페라 <돈 파스콸레Don Pasquale>다. <돈 파스콸레>는 이번 페스티벌 참가작 중에서 유일하게 오페라를 원어로 노래하며 전통적인 오페라 공연 방식으로 무대에 오른다. 2017년 <제10회 대한민국오페라대상>에서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한 이 작품은 도니체티의 유쾌한 선율과 익살스러운 캐릭터들이 펼치는 한바탕 대소동을 출연 성악가들의 탄탄한 호흡으로 선보인다. 정통 이탈리아 오페라에 가장 가까운 이 작품이 다른 번안 오페라나 창작 오페라와 어떤 다른 매력을 갖고 있는지 비교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진화하는 한국 오페라의 모습을 담아

21세기 대한민국의 오페라인들은 이런 소극장 오페라를 모아 페스티벌을 개최하고 있다.

경상오페라단의 <돈 파스콸레> 포스터.

문화산업적 측면에서 오늘날 오페라는 그리 전망이 밝은 분야는 아니다. 많은 순수예술의 경우처럼 오페라는 동서양을 가릴 것 없이 상당히 고전하고 있다. 심지어 어떤 철학자는 현대의 오페라를 ‘거대한 유물’이라 일컫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예술의 원천적 기능을 하는 순수 종합예술로서 오페라가 지닌 힘은 여전히 막강하다. 한국 오페라 역시 어려운 여건 속에서 강한 생명력과 소명 의식을 가지고 살아남았다. 그리고 한국인의 정서와 고유한 풍토에 맞춰 진화하고 있다. 이번 <제19회 한국소극장오페라축제>는 그 모습을 생생하게 확인하는 현장이 될 것이다.

손수연 오페라 평론가, 상명대학교 교수
오페라와 다른 모든 예술 사이의 관계를 추적하는 데 관심을 갖고 있다. 저서로는 『그림으로 읽는 아리아』가 있다.

제19회 한국소극장오페라축제

기간 2020.03.27(금)~2020.04.12(일)
시간 화~토 14:00, 19:30 / 일 17:00 / 월요일 공연 없음
장소 자유소극장
관람등급 8세 이상 관람
관람시간 120분
장르 오페라
가격 일반석 5만 원
주최 한국소극장오페라연합회, 한국오페라인협회
주관 한국소극장오페라축제 조직위원회
문의 02-3487-0678
후원,협찬 예술의전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