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ME TALK

불안을 잠식시키는 무지갯빛 드링크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 2019>展
02.06.(목)~04.23.(목) | 한가람미술관
ⓒAntoine_Corbineau

예술은 불안의 면역제

생각해내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생각이 더 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다 포기하고 다른 일을 하는 동안 갑자기 생각이 떠오르고 문제의 해결책이 보이기도 한다. 다른 일을 한다는 것은 일종의 정신적인 여행이다. 거주해오던 공간을 떠나 지상 또는 동굴 아래로 가본다면 불현듯 어떤 깨달음이 주어질 수 있다. 현재 자기 삶의 실체를 똑바로 직시하게 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도 있다. 이런 공간 이동은 어둠에서 빛으로, 현실에서 상상으로 또는 만질 수 있는 이 세계에서 만질 수 없는 무의 세계로의 이동이다. 『플라톤의 대화』에 보면 어둠으로 인해 거짓과 착각이 가득 찬 동굴 세계에서 탈출한 철학자가 빛이 찬란한 높은 곳 이데아계에 도달하여 진짜와 진실을 알게 된다.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시도할 수 있는 것은 이곳에서 저곳으로의 여행, 산책 또는 낮잠, 또는 딴짓 등이다. 스스로에게 베푸는 짧은 산책은 삶의 문제를 차근히 더듬어보고 되짚어볼 시간을 주며 해결의 열쇠를 발견케 한다.

지금 세상은 코로나19에 휩싸여 질식할 듯한 상태에 놓여 있다. 여기에서 저기로의 이동은 막혀 있고 사람들 간의 만남도 꺼려지는 상황이다. 질병은 일차적 피해이고 질병에 대한 불안은 이차적 피해다. 불안은 매사 조심하게 되는 긍정적 효과를 가져오기도 하지만 질병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 삶 속에는 질병 이외에도 생존에 대한 걱정 등 여러 가지 불안이 동반된다. 불안을 잠식시키는 심리 면역의 길은 무엇일까? 그런 길 가운데 하나가 진짜 세상이 아닌 만들어진 세계로의 탈출이다. 음악과 미술 그리고 문학, 영화처럼 만들어진 예술 작품의 세계 속에 빠져보는 것은 어떨까? 세상모르는 아이들이 즐겨 읽는 동화책이어도 좋겠다. 동화에 담긴 무지갯빛을 마셔보는 것은 어떨까?

ⓒMaria Cecilia Rodriguez Oddone

빨강, 노랑, 파랑은 영혼의 비타민

지금 예술의전당에서는 세계 최대의 아동 도서전이 열리는 붉은 지붕의 도시, 볼로냐에서 온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 2019>가 열리고 있다. 회화적인 관점에서 큰 상을 수상한 아주 특별한 동화책들이 관객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아동은 물론 성인에게도 가치 있는 전시회다. “그림책은 어린이의 첫 번째 미술관이고 어른들에게는 어릴 때 접할 수 없었던, 또는 영영 잃어버린 미술관이기 때문이다.”

무지개 빛깔로 염색된 컬러풀한 동화책은 우리 영혼의 3대 비타민, ‘빨강, 노랑, 파랑’의 풍성한 먹거리를 제공한다. 빨강은 심신의 에너지를 충전시켜준다. 실제로 운동경기에서 빨간 유니폼을 입은 뒤 몸속 아드레날린 수치가 높아져 선수들의 실력이 눈에 띄게 늘었다는 보고가 있다. 빨강은 기쁨이고 행복이다. 노랑은 태양의 색으로 우울한 마음을 밝게 해준다. 색들 가운데 가장 나이가 어린 귀여운 색이다. 공부가 잘 안 될 때 노랑을 바라보면 기억력이 증진된다고 한다. 파랑은 멀어지면서 유혹하는 색이고 신비와 신뢰, 성실성의 색이다. 지루한 시간을 훌쩍 지나가게 만드는 마법도 부려준다. 빨강에 노랑이 섞인 주황은 세상 가까이 다가가는 사교적인 색이고 빨강에 파랑이 섞인 보라는 세상으로부터 멀어져가는 특별한 색이다. 그 모든 색이 장단점과 앞뒷면을 가지고 있고 인간처럼 개성이 넘친다. 일러스트전 바깥벽에는 굉장한 동화책들이 진열되어 있다. 파라다이스의 새들이 날아다니는 듯한 오색 무늬가 있는가 하면 황금색, 검정색, 흰색 페이지마다 정교한 종이 오리기를 통해 찬란한 형태들이 자신을 뽐내기도 한다. 다양한 색들과의 만남은 영혼을 새롭게 환기시키는 즐거운 체험이 될 것이다.

ⓒLiuna_Virardi

그림책은 독자에게 주는 정성 가득한 선물

우리는 모바일 세상에 살면서 책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번 전시에 소개된 동화책들을 보면 책에 대한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동화책들은 마치 백 일 밤을 새워 지은 멋진 궁전처럼 보인다. 두 손에 피가 맺히는 정성을 들여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작가들의 노고가 느껴질 정도다. 전시장 안쪽에는 아직 물감이 마르지 않은 듯한 원화들이 즐비하다. 세상 사람들을 위해 만든 그림 선물, 동화 선물을 보면서 나를 위한 만찬이라는 착각에 잠시 빠져보면 어떨까. 바이러스의 위협으로부터 도피하여 위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 나는 책 읽기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당시의 동화책은 예쁘지도 않았을뿐더러 삽화도 많지 않았다. 책이란 그저 하얀 종이 위의 까만 글씨일 따름이었다. 우리가 보는 대상들은 무의식 속에 층층이 쌓여 인격의 한 부분이 된다. 다채롭게 어울리는 색들의 천국을 맛보지 못하고 자란 나는 가끔 그림을 그리면서 색을 고르는 데 다소 어려움을 느낀다. 화가 파울 클레는 ‘화가의 본질은 색과의 혼연일치’라고 했다. 말 그대로 색을 칠하면서 ‘척하면 척’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머리로 생각하기도 전에 마치 마술처럼 손가락이 이 색 저 색을 집어 들어 칠하는 신들린 경지말이다. 요즘의 동화책을 보면 너무도 부럽다. 그림도 찬란하지만 내용도 미리 예측하기 힘든 수수께끼나 퍼즐 맞추기처럼 아주 재미있다. 아름다운 색을 먹으며 무럭무럭 자라나는 요즘의 어린이들은 생기 있고 건강한 영혼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Gaia_Stella

동화가 베푸는 독서치료

동화책은 미술치료 효과뿐만 아니라 독서치료의 효과도 있다. 예를 들자면 『개구쟁이 해리』라는 동화에는 검은 점 있는 하얀 개, 해리가 나온다. 해리는 목욕을 싫어해서 목욕 솔을 땅에 파묻고 피해 다니며 온 동네를 떠돌다가 그만 흰 점 있는 검은 개가 되어버린다. 가족들이 해리를 알아보지를 못하자 해리는 숨겨둔 목욕 솔을 꺼내어 자기를 씻겨달라고 한다. 목욕을 싫어하는 아이들이 이 동화를 읽으면 해리와 자신의 비슷한 점을 느끼고 공감하게 될 것이다.(『독서치료』, 김현희 외 공저, 학지사, 142~143쪽)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 2019> 전시가 끝나는 곳에 도서 판매장이 있다. 거기서 내가 집어 든 책은 칼데콧상을 수상한 오게 모라 글, 그림의 『할머니의 식탁』이다. 이 동화는 갈색과 올리브색, 붉은 보라색이 어우러져 색의 만찬을 이룬다. 책에서는 할머니의 요리가 맛있다고 하는데, 이미 동화책의 배색이 너무 맛있다. 토마토 스튜를 맛있게 끓이던 할머니의 요리 냄새가 온 동네로 퍼져 나가자 길을 가던 사람들이 차례로 할머니 집에 찾아와 스튜를 얻어먹는다. 그 바람에 스튜가 바닥나 할머니는 먹을 것이 없어 울상을 짓는다. 그러나 잠시 후 스튜를 얻어먹은 사람들이 줄지어 음식 선물을 가지고 나타난다. 남에게 베푸는 정은 우리네 삶을 살 만한 따스한 장소로 만들어준다는 사실을 느끼게 해주는 이야기다. 책은 영혼을 위한 음식이다. 책의 맛을 유년기부터 알게 된다면 아이의 인생은 벌써 성공적이다. 돈벌이의 관점이 아니라 건강하고 기름진 영혼의 관점에서 그렇다. 지혜를 낚시질하는 방법을 터득한 아이는 책 속의 지혜를 무기 삼아서 어떤 역경도 잘 헤쳐 나갈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다양한 인물들이 묘사되고 있다. 행복과 불행 등 각자의 사는 모습은 거의 인간관계가 결정해준다. 인간으로 인해 기분 상하고 화나고 슬프고 안타깝고 그립고 고독하다. 실제 삶 속의 분노와 증오와 그리움을 잠시 접어두고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 2019>의 인물들을 만나보라. 그들은 우리를 화나게 하지 않고 부담 주지 않는 인간들, 내장이 없는 가벼운 인간들, 천사들, 요정들이다. 그 앞에서 한마디 던져볼 수도 있겠다. 심리치료에서 ‘빈 의자 기법’이라고 부르는 대화 기법이다. 과거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사람이 앞에 있다고 가정하고 맘껏 감정을 표출해보는 것이다. 그는 여러 친구들 앞에서 나를 야단친 선생님일 수도 있고 나를 따돌리고 놀린 친구의 엄마일 수도 있다.

ⓒLiuna_Virardi

화가 마티스의 그림에는 실내의 벽과 창문, 테이블, 양탄자 등이 자주 묘사된다. 그런데 벽이 때로 빨강, 파랑, 초록, 노랑 등 원색으로 칠해져 있다. 이것이 정말 사람이 사는 공간인가? 아니면 마티스의 상상에 불과한가? 그러나 유럽 사람들의 집 내부에는 정말로 삼원색이 아무 거리낌 없이 맘껏 사용되곤 한다. 어린이들은 동화책을 볼 수 있지만 나이 든 어른들은 어디서 어떻게 색들을 먹을 것인가? 우리의 영혼은 너무 오랫동안 색에 굶주려 있지는 않았나? 파란 자유, 빨간 에너지, 노란 기쁨, 초록색 평안······. 영혼의 허기를 어디서 채울 것인가? 원한다면 문구점에서 색종이 한 꾸러미나 사인펜 한 세트를 구매할 수도 있겠다.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렸던 <오! 에르베 튈레 색색깔깔展>의 튈레를 흉내 내어 색종이를 자유롭게 찢고 붙이고 물감을 줄줄 흘려보면 기분이 아주 좋아질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 마치 물감으로 수를 놓은 듯 심혈을 기울인 동화 그림들을 만나는 것도 적극 추천할 만하다.

조정옥 뮌헨대학교 철학박사, 미술치료사
저서 『한 권으로 보는 예술철학·예술치료 이야기』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 2019>

기간 2020.02.06(목)~2020.04.23(목)
시간 10:00-19:00(입장 마감 18:00) ※ 매주 월요일 휴관
장소 한가람미술관 7전시실
관람등급 전체관람
장르 전시
가격 일반 12,000원 / 청소년(만 13세-18세) 10,000원 / 어린이(36개월-만 12세) 8,000원
주최 예술의전당, 씨씨오씨
주관 메이크앤무브
문의 02-837-6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