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예술의전당 연극 무대에 올랐던 역대 주인공은 누구일까?

예술의전당 자료실에 잠자고 있던 하드디스크를 탈탈 털어 찾았다.
우리 시대의 배우들이 예술의전당 무대에 섰던 진지하고도 풋풋한 모습들.

요즘 큰 인기를 끄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발견되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연극이나 뮤지컬 무대에서 활약했던 연기파 배우들의 면면이 눈에 띈다는 것. 언론에서는 이들을 ‘일약 스타덤에 오른 배우’, ‘숨은 실력자들의 발굴’ 등의 수식어로 묘사하기도 하지만, 사실 알고 보면 이미 연극·뮤지컬 무대를 통해 연기의 경험치와 폭을 끊임없이 넓혀왔던 배우들인 경우가 많다. 특히 1988년 개관해 지금까지 한자리를 지켜온 예술의전당은 모든 배우들이 꼭 한 번쯤 오르고 싶어 하는 무대이자, 오랜 시간에 걸쳐 걸출한 스타 배우들을 다수 배출해낸 극장이기도 하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무대가 장기간 텅 비어있던 최근, 예술의전당 무대에 함께했던 연기파 배우들과의 무대 기록을 찾아봤다.

영화 <기생충>의 송강호와 이정은, 모두 예술의전당 무대에?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 88학번 출신으로 국내 유수의 극단 중 하나인 ‘한양레퍼토리’에서 활동했던 이정은 배우는 최근 칸영화제에 이어 골든글로브와 오스카까지 석권한 영화 <기생충>의 가정부 ‘국문광’ 역으로 큰 사랑을 받았다. 이 영화 이전에도 그동안 출연했던 작품들이 다시 조명을 받으며 대중의 찬사를 이끌어낸 그는, 1994년 예술의전당 토월극장(현재 CJ 토월극장) 무대에 오른 연극 <집>(1994.8.26.–9.11.), 1995년 자유소극장 무대에 오른 연극 <한여름밤의 꿈>(1995.6.3.–7.14.) 등의 작품을 통해 연기의 초석을 다졌다.

예술의전당 자료실에 잠자고 있던 하드디스크를 탈탈 털어 찾았다. 우리 시대의 배우들이 예술의전당 무대에 섰던 진지하고도 풋풋한 모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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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정은의 연극 <집> 당시 프로필 사진(좌)과 연극 <한여름밤의 꿈> 당시 프로필 사진(우). 밝고 앳된 모습이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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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정은은 영화 <기생충>에서 가정부 ‘국문광’ 역을 통해 크게 주목받았다. ©바른손이앤에이

재미있는 부분은 당시 이정은과 함께 출연했던 배우들 모두 현재 쟁쟁한 대스타라는 점이다. 1994년 공연한 연극 <집>에는 영화뿐만 아니라 연극, TV 드라마 등을 통해 ‘색깔 있는’ 연기를 보여주던 이혜영, 그리고 당시에도 주목받는 연기자였지만 훗날 영화 <친구>로 스타덤에 오른 유오성이 각각 남녀 주인공을 맡았다. 이정은은 그 다음 해인 1995년 예술의전당이 주최한 ‘해외 명작가 시리즈1 – 셰익스피어 연극제’에서 최고의 흥행을 기록한 <한여름밤의 꿈>으로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의 3년 선배인 영화배우 권해효를 비롯해 김의성, 안내상 등 선배들과 한 무대에 서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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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연극 <집>에 출연한 배우 이혜영과 유오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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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연극 <한여름밤의 꿈>에서 흡인력이 돋보이는 연기를 펼쳤던 배우 권해효.

또한 영화 <기생충>의 주인공인 아버지 ‘기택’ 역을 맡은 영화배우 송강호 역시 같은 해인 1994년, 다른 작품으로 예술의전당 무대에 올랐던 이력이 있다. 송강호는 당시 극단 막내로서 20대의 나이에 극단 목화의 연극 <자전거>(1994.5.21.–6.10.)로 자유소극장 무대에 처음 올랐는데, 성숙한 외모에 걸맞게 ‘당숙’ 역을 연기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작품에 연극, 영화, 방송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며, 현재 영화감독으로도 조명받고 있는 배우 김윤석이 함께 출연했다는 사실이다. 당시 ‘임 선생’으로 분한 김윤석은 1990년 서울에 올라와 처음 연기를 시작했는데, 그때 처음 만난 송강호와 함께 연극을 하며 우정을 다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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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자유소극장 무대에 함께 올랐던 배우 김윤석(좌), 송강호(우)는 이후 한국 영화를 대표하는 배우로 성장했다. 당시 필름 사진 인화본.

화제의 드라마 속 주인공 배우들도 예술의전당 무대 출신

최근 시청률 20프로대를 넘기며 큰 화제를 모은 JTBC 드라마 <부부의 세계>에서 얼굴을 알린 배우들도 일찍이 예술의전당 무대에 데뷔한 바 있다. 불륜을 저지르며 가족과의 불안정한 관계로 인해 서서히 인생을 망쳐가는 주인공 ‘이태오’ 역의 배우 박해준은 2005년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공연한 연극 <아가멤논>(2005.4.23.–5.11.)에 출연했다.

당시 그리스의 대표 연출가 미하일 마르마리노스를 초청해 선보인 이 작품은 주인공부터 코러스까지 전 배역을 대상으로 치열한 오디션 심사를 거쳤는데, 현재 영화, 드라마, 뮤지컬 등 여러 장르를 종횡무진 넘나들며 활약 중인 배우 박호산과 드라마 <스토브리그>, <슬기로운 의사 생활> 등에서 남다른 존재감을 과시하는 배우 김수진이 주인공으로 발탁되었다. 박해준은 현재의 예명을 짓기 전, ‘박상우’라는 본명으로 출연해 코러스 역을 맡았는데, 장영남, 남명렬, 신안진 등 쟁쟁한 선배들과 함께했다.

2005년 연극 <아가멤논>을 공연한 배우와 스태프들. 맨 뒷줄에 서서 해맑게 웃고 있는 박해준 배우의 모습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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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아가멤논>에서는 박호산(좌), 장영남(우) 같은 걸출한 배우들이 무대를 빛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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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준은 <부부의 세계>에서 ‘이태오’ 역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히 알렸다.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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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아가멤논>에서 주인공으로 발탁된 김수진은 최근 <슬기로운 의사 생활>에서도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다. ©tvN

또한 같은 드라마 <부부의 세계>에서 ‘손제혁’ 역으로 주인공 지선우의 복수를 도왔던 배우 김영민 역시 일찍이 예술의전당 무대에 올랐던 재원이다. 그는 2002년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무대에 올린 <레이디 맥베스>(2002.6.8.–6.23.)에 출연해 당시 이미 쟁쟁한 선배였던 배우 정동환, 서주희와 작품을 함께했다. <레이디 맥베스>는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맥베스>를 극작가 겸 연출가 한태숙이 맥베스의 부인, 즉 레이디 맥베스의 시각에서 번안, 창작, 연출한 작품으로, 1999년 초연 이후 각종 연극상을 휩쓴 뒤 2000년과 2002년 예술의전당에서 재공연되기도 했다. 당시 함께 공연진행을 맡았던 이들의 전언에 따르면, 한태숙 연출은 김영민 배우를 특히나 아껴 여러 작품을 함께 작업했다고 한다. 김영민은 그후 시간이 한참 흐른 2015년 연극 <나무 위의 군대>(2015.12.19.-2016.02.28.)에도 분대장 역으로 출연해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무대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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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영민은 연극 <레이디 맥베스>에서 섬세하면서도 강렬한 연기를 보여주었다.
당시 반삭을 감행한 헤어스타일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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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에서 놀라운 싱크로율을 보여주며 ‘장국영’ 역으로 활약한 배우 김영민. ©지이프로덕션, 윤스코퍼레이션 

이 배우도 예술의전당 무대에?

이외에도 예술의전당 무대에 올랐던 걸출한 배우들의 이름을 나열하자면 사실 끝이 없다. 2002년과 2003년 토월극장 무대에 오른 박근형 연출의 연극 <대대손손>(2003.4.19.–5.4.)에는 영화배우 박해일을 비롯해 최근 드라마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진경과 고수희가 출연했다. 2004년에는 연극 <보이체크> 리바이벌 공연에 배우 오만석이, 2007년 토월극장 무대에 오른 <사랑과 우연의 장난>(2007.6.13.–7.1.)에는 배우 김석훈과 이민정이 함께 로맨스 연기를 펼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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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대대손손>에는 영화배우 박해일과 최근 드라마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진경, 고수희가 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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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대대손손>에 출연한 배우 박해일, 진경, 고수희의 당시 프로필 사진.

연극이 자주 공연되는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의 CJ 토월극장과 자유소극장은 1993년에 완공되었다. 예술의전당은 이를 기념해 1993년 전관 개관 기념 축제를 개최하면서 유수의 극단과 유명 희곡, 걸출한 극작가들의 작품을 연쇄적으로 초청했다. 그 이후에도 ‘우리 시대의 연극’ 시리즈, ‘셰익스피어 연극제’, ‘자유젊은연극’ 시리즈 등을 통해 우수한 창작자들의 작품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러나 다른 그 무엇보다 지난 수십 년간 멋진 배우들이 무대를 채워주지 않았다면 현재의 예술의전당과 그 명성은 지금 같지 않을 터. 예술의전당 역시 무대에서 피, 땀, 눈물을 흘려가며 노력한 배우들과 그 시간들을 함께해준 관객들 덕분에 지금까지 빛나는 것이 아닐까. 코로나19가 하루빨리 종식되고 인적 없는 무대를 다시 멋진 배우와 스태프, 관객들이 함께 채워주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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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연극 <보이체크> 리바이벌 공연에서는 배우 오만석의 신들린 연기를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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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오만석은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에서 야망에 불타는 북한군 장교 ‘오철강’을 연기했다.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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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연극 <사랑과 우연의 장난>에서는 배우 김석훈과 이민정이 로맨스 연기를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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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도는 최근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 생활>로 일반인들에게 유명해졌지만 일찍이 2014년 연극 <메피스토>에서 놀라운 캐릭터 소화력을 보여준, 연극과 뮤지컬에 고루 능한 배우다.

그동안 예술의전당 무대에 올랐던 배우들의 이름이 궁금하다면, 개관 이후 30년의 역사를 총망라해놓은 ‘예술의전당 30년 DB’ 홈페이지를 참조해도 좋을 것이다. (www.sac.or.kr/30DB)

장재선 문화일보 선임기자
문화부에서 공연 기사를 쓰고 있다. 국제PEN, 한국시인협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원. 보도와 저술 활동 공로로 한국언론정보학회 올해의 기획상, 임승준 자유언론상, 서정주문학상, 가톨릭문학상 등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