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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이, 古典을 넘어서다

2020 예술의전당 창작오페라 〈춘향〉
8.29(토)~9.2(수) | 자유소극장

작가 노트
2020년 새로운 춘향이의 탄생

1. 변 사또는 춘향이를 정말 사랑했을까?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춘향전』을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보기로 했다. 교과서에서 무엇보다 춘향이를 탐하려던 변 사또의 악행을… 변 사또의 악행, 이라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또 다른 권선징악과 사회 통념에 맞춘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아무튼 교과서에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라, 전혀 다른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교과서적인 이야기는 언제나 그렇듯 신선하지 않기 때문이다. 반항적인 기질이 많은 나는, 춘향이의 이야기를 다른 서사구조로 바꿔보면 어떨까 싶었다. 기회가 왔을 때 써보자. 그런 부푼 꿈을 안고 <춘향>을 쓰기 시작했다. 그동안 내가 알았던 『춘향전』에 관한 모든 것을 잊기로 했다. 그리고 새로운 이야기를 탄생시키자, 하고 마음먹었다.

2. 그래, 변 사또는 정말 춘향이를 사랑했었다.

이렇게 시작한 이야기가 창작오페라 <춘향>이다. 변 사또가 순진무구하고 애타게 부르다가 지친 그 이름 춘향. 변 사또는 밤마다 춘향이를 생각한다. 춘향이를 부르짖다가, 눈물을 흘리다가 끝내 지쳐서 잠이 든다. 춘향이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변 사또는 춘향이만 생각해도 몸을 부르르 떨 정도다. (정말 애처롭구나!) 이 얼마나 애타는 사랑인가? 변 사또는 오직 춘향이와 아무도 모르게 깊은 산속으로 도망가서, 물장구를 치며 사랑만 하기를 바란다.

그런 변 사또의 간청을 춘향은 단칼에 거절한다. (춘향은 몽룡과 이미 혼례를 치른 유부녀!) 그리고 춘향은 몽룡을 미치도록 사랑하기 때문에. 결국 춘향은 옥중에 갇힌다. 그 감옥에 앉아 몽룡이 과거급제를 해서 하루빨리 돌아오기를 기다리지만, 몽룡은 오지 않고! (몽룡이 쉽게 춘향이를 감옥에서 빼내면 이야기는 재미가 없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몽룡이 춘향이 앞에 올 수 없는 일을 만들어내기에 이릅니다.)

3. 과거급제해, 암행어사가 된 몽룡은 교과서에나 있을 뿐!

이번 <춘향>에서 몽룡은 공부를 못해 끝끝내 과거에 합격하지 못한 인물로 등장한다. 몽룡이 공부를 잘해서 암행어사가 되어 단칼에 춘향이를 위기에서 구해준다는, (정말 이런 이야기는 너무나 비현실적이지 않습니까?) 그런 이야기는 책이나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는 이야기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나? (이제 그런 진부한 이야기는 싫습니다.) 우리는 조선 시대로 돌아갈 수 없는 사람들인데 언제까지 그런 이야기를 들어야 하나? 그런 의문이 들었습니다.

몽룡은 방자보다 똑똑하지 못하고 공부도 못한다. 시험을 볼 때마다 떨어지고 급기야 공부를 열심히 할 마음도 없다. 오직 춘향이를 사랑하는 마음만 있을 뿐. 그뿐이다. 그래서 그 어떤 일도 본인 손으로 해결할 수가 없는 처지. 이렇게 이야기를 그려야 인간적이지 않을까? 나는 이런 인간적인 방향으로 이야기를 써나갔다. (몽룡은 공부를 지지리도 못했고, 과거에 자꾸만 떨어지고 만다!) 방자는 그런 몽룡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향단이와 춘향이에게 전한다.

이 대목에서는 나실인 작곡가의 멋진 이야기(몽룡이 자꾸만 시험에 떨어진다는 이야기)를 받아들였습니다. 나실인 작곡가와 창작오페라 작업할 때는 정말 많은 의견을 주고받으며 회의를 합니다. 함께 오래 작업해온 만큼, 상대방이 하는 말을 정확하게 바로 알아듣는 그런 묘한 능력이 생겼습니다.

2020 예술의전당 창작오페라 〈춘향〉

오페라 <춘향>은 성공적인 공연을 위해 출연진과 스태프의 열정을 한곳에 모으고 있다. ⓒ예술의전당

4. 춘향은 당차게 탈옥을 감행한다

자꾸만 시험에 떨어지는 몽룡을 보다 못한 춘향은 본인의 사랑을 굳건하게 지키기 위해 탈옥을 감행한다. (겁도 없는 우리의 춘향이 같으니라고!) 몽룡이 본인을 지켜주지 못한다면,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지키고, 사랑도 지켜야 했으므로. 탈옥한 춘향이를 본 몽룡은 그저 놀라 자빠졌을 뿐, 어떤 방법도 생각해내지 못한다. 그래서 다시 춘향은 본인도 살고 모두가 살 수 있는 방법을 몽룡에게 제시한다. 몽룡은 그저 춘향이 시키는 대로 할 뿐.

몽룡이 자꾸만 시험에 떨어진다는 이야기가 재밌지 않겠냐는 작곡가의 말에, 아하! 그렇다면? (아예 춘향이가 탈옥해서 몽룡을 만나러 한양에 가야겠다는 저의 발상이 이어졌습니다.) 당찬 춘향이의 탈옥기.

5. 변 사또의 사랑은 처절하게 끝나고 만다. 비참한 변 사또여!

변 사또의 사랑은 정말 처절하게 끝나고 만다. 인간적으로 들여다보면 참으로 비참할 정도다. 이루지 못한 사랑이 제일 아프기 때문에. 변 사또의 사랑은 이미 유부녀가 된 춘향이를 사랑했기에 이루어질 수 없었다. (또, 처음부터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기도 했다.) 변 사또 스스로는 본인의 사랑이 세상에서 가장 순순한 사랑이라고 믿었지만, 현실은 그러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지 않았다. (또 그래서도 안 되는 일이고!) 변 사또의 사랑은 이번 생에서는 이루어지지 못했다. 다음 생에 태어난다면 몽룡이보다 먼저 춘향이를 만나기를! 춘향하고 사랑이 이루어졌어도 변 사또는 숱한 지탄을 받아야 했으므로 불행했을 것이다. 그 사실을 알았기에 <춘향>에서 변 사또는 춘향에게 깊은 산속으로 도망을 치자고 그렇게 애걸복걸했던 것이다.

글 윤미현 극작가
동아연극상 희곡상, 두산연강예술상, 벽산희곡상, ASAC창작희곡공모 대상, 전국창작희곡공모 금상, 제1회 대한민국연극제 대상, 서울연극제 희곡상 등을 받았다.

작곡가 노트
등장인물들의 욕망을 담은 아리아

윤미현 작가의 <춘향>에 노래를 붙이는 일은 그 어느 때보다도 즐겁고 흥미진진했다. 우선 이야기 자체가 정말 재미있었다.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춘향전』의 기본 서사를 그대로 갖고 있지만, 각각의 등장인물에 대한 윤미현 작가만의 새로운 시각과 해석은 나를 흥분하게 했다. 춘향이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변 사또, 자기 인생은 자기가 결정한다며 과감히 탈옥을 감행하는 춘향이, 인간적으로 참 괜찮은 사람 몽룡이, 지혜로운 방자와 향단이, 아름다운 월매. 이들은 나의 부족하고 왜곡된 지식과 편협한 상상 속 조선 시대에 있을 법한 인물들이 아니라 오히려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의 모습에 더 가까웠다. 이들은 극 안에서 정말 솔직하다. 자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고 있고, 그것을 얻기 위해 행동한다. 어떻게 보면 이들의 이러한 모습들이 매우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그래서 재미있는 것이다. 마치 공상과학영화에서 슈퍼영웅들이 초자연적인 힘을 과시하며 나의 욕망을 만날 수 있게 해주는 것처럼, 윤미현 작가의 <춘향>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오히려 이게 바로 ‘인간’이다 하고 나에게 말해주는 것 같았다.

이들이 극 안에서 하는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노래가 되기에 충분했다. 창작오페라 <춘향>에 등장하는 아리아는 모두 기본적으로 ‘러브송’이다. 하지만 이 노래들은 단순히 사랑의 감정을 여러 언어로 표현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모든 노랫말에 각자의 진심이 담겨 있고, 마음 깊은 곳의 사소한 욕망까지 최대한 솔직하게 표현되어 있다. 변 사또는 춘향이에 대한 이루지 못할 사랑을 노래하는데, 사실은 본인의 주체하지 못하는 성욕을 사랑으로 착각하고 있다.

2020 예술의전당 창작오페라 〈춘향〉

변 사또의 아리아 ‘춘향아 춘향아’ 중에서. ⓒ나실인

춘향이는 자기가 죽어 몽룡을 다시 볼 수 없게 되더라도 후회하지 않는다고 노래한다. 그녀는 애초에 몽룡의 장원급제만 기다리며 자신의 신분 상승을 꿈꿨던 인물이 아닌 것이다.

2020 예술의전당 창작오페라 〈춘향〉

춘향과 몽룡의 이중창 ‘그네’ 중에서. ⓒ나실인

몽룡은 모든 사람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나라를 꿈꾸는 사람이다. 과거에 급제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그는 여전히 좋은 사람이다. 월매는 옥에 갇혀 있는 소중한 딸 춘향이에 대한 사랑을 노래한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지금까지 사는 날 동안 만나 사랑했던 사람들과의 추억 또한 소중하다. 방자와 향단이의 사랑은 훨씬 현실적이다. 이 둘은 좀 촌스럽더라도 함께 고생하며 지지고 볶는 사랑이 참사랑이라고 노래한다.

창작오페라 <춘향>은 이처럼 사랑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제시해준다. 새로운 <춘향>을 만들면서 지고지순한 사랑은 이루어지고야 만다는 거짓말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은 사랑 타령하고 있을 만큼 그리 녹록하지 않다.

변 사또의 경우, 어쩌면 치열한 경쟁 속에 정답만을 강요하는 세상에서 그와 같이 공감 능력이 다소 결여된 인물이 만들어진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공부만 한 변 사또가 사랑에 대한 감정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저지른 많은 잘못은 그 대가를 치뤄야만 한다. 하지만 그를 단순한 악역으로 몰아세워 파멸시키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그는 모두에게 불쌍히 여김을 받아 마땅하다. 앞으로 그러한 세대가 등장하지 않도록 우리 사회를 돌아보아야 한다.

글 나실인 작곡가
중앙음악콩쿠르 1위를 수상한 바 있으며, 오페라 <나비의 꿈>, <블랙리코더>, <빨간 바지>, 발레 <처용>, <오월바람>, 음악극 <극장 앞 독립군> 등을 작곡하였다.

오페라 <춘향>

기간 2020.8.29(토)~2020.9.2(수)
시간 화~금 7:30PM/ 토~일 3PM ※ 월 공연 없음
장소 자유소극장
관람등급 8세 이상
장르 창작오페라
가격 전석 5만 원
주최 예술의전당

사진 (주)아트센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