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한복 정장, 오페라 무대에 오르다
의상 디자이너 김리을 인터뷰

로맨틱코미디오페라 〈춘향 2020〉
8.29(토)~9.2(수) | 자유소극장
〈춘향 2020〉 무대의상 디자이너 김리을. ⓒ이보영

예술의전당이 제작하는 로맨틱코미디오페라 <춘향 2020>. 자유소극장에서 개막을 앞둔 이 공연은 타이틀만 봐도 성격을 짐작할 수 있다. 『춘향전』이야 너무나 잘 알려진 고전이지만, ‘코미디’이라는 수식어가 붙었으니 본래의 춘향전과는 달라졌을 터. 여기에 연도까지 표시해 2020년에 새롭게 해석한 이야기라는 점을 강조했다. 현대적인 춘향이 전통 한복을 그대로 입을 수는 없는 법. <춘향 2020>의 의상은 ‘한복 정장’으로 유명세를 탄 디자이너 김리을이 맡았다.

예술의전당이 제작하는 로맨틱코미디오페라 . 자유소극장에서 개막을 앞둔 공연이다.

한복 정장으로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이끈 김리을 디자이너. 그가 입고 나온 한복 정장이 근사하다. ⓒ이보영

디자이너 김리을의 첫걸음

김리을. 본명 김종원. 올해 28세의 젊은 디자이너다. 대학 재학 시절부터 창업해, 광고와 마케팅 분야에서 일해왔다. 스스로를 ‘기획자’로 일컫기도 한다. 의상디자인을 전문적으로 배운 적은 없다. 한복 정장의 아이디어는 우연한 계기에서 시작되었다. 전주 한옥마을에서 한복을 빌려 입어본 외국인 친구가 ‘한복은 원단은 정말 예쁜데 입으니까 너무 불편하더라. 그래서 한국인들도 안 입는 거지?’ 물었고, ‘아, 그럼 예쁜 한복 원단으로 입기 편한 정장을 만들면 되겠네!’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예술의전당이 제작하는 로맨틱코미디오페라 . 자유소극장에서 개막을 앞둔 공연이다.

고전 속 인물들은 <춘향 2020>에서 21세기의 한복 정장 차림을 선보인다.

처음에는 고급 한복 대여업을 해보려고 했다. 전국 곳곳의 원단 가게와 제조업체를 찾아다니며 자신의 아이디어를 현실화했다. 처음에는 ‘누가 한복 원단으로 정장을 만드냐’며 만류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2016년, 갓 쓰고 곰방대 문 흑인 모델에게 한복 정장을 입혀 찍은 화보가 SNS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내면서, ‘한복 정장’이 독특하고 새로운 패션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스포츠 브랜드 뉴발란스가 비슷한 콘셉트로 광고를 의뢰해오자, 김리을은 당시 모델 한현민을 기용해 광고를 찍었다. 한현민의 한복 정장과 스포티한 운동화가 절묘하게 어울린 이 광고도 입소문을 탔다. 한복 정장으로 패션쇼도 열었다. 한복 정장을 입고 싶어하는 유명 인사들이 늘어났다. 지코가 한복 정장을 입고 찍은 펩시콜라 광고는 화제성을 더했다. ‘김리을이라는 사람’이 화제가 되면서, 광고 출연 요청도 받았다. 그가 직접 출연한 롯데칠성 트레비 음료 광고는 ‘디자이너 김리을’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렸다.

예술의전당이 제작하는 로맨틱코미디오페라 . 자유소극장에서 개막을 앞둔 공연이다.

자유롭고 적극적인 춘향의 의상은 녹의홍상을 모티프로 한 슈트.

춘향, 21세기 한복으로 새 단장

한복 대여업을 해보려고 시작했던 일이 ‘디자이너의 길’로 이어졌다. 김리을은 한복 명장들을 찾아다니며 가르침을 받고, 더 멋진 한복 정장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최근 전북 남원시는 ‘한복 도시’ 브랜드를 알리기 위해 그를 홍보대사로 위촉했다. 남원은 그가 태어나고 자란 도시이며 ‘춘향의 본고장’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니 <춘향 2020>의 의상을 김리을이 맡은 건 필연 같다.
“춘향 의상은 예전에 새색시 한복(녹의홍상)에 많이 썼던 빨강과 초록을 기본 색으로 했어요. 그런데 21세기 춘향이니까 21세기 한복으로 입혀야죠. ‘자유로운 새색시’ 스타일이라고 할까요.”

예술의전당이 제작하는 로맨틱코미디오페라 . 자유소극장에서 개막을 앞둔 공연이다.
예술의전당이 제작하는 로맨틱코미디오페라 . 자유소극장에서 개막을 앞둔 공연이다.

변사또와 이몽룡이라는 인물을 드러내는 무대의상.

<춘향 2020>의 변사또는 춘향을 진심으로 사랑한다. 날마다 연애편지를 쓰고, 춘향을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겠다며 옥에 가둬버린다. 하지만 21세기 춘향은 몽룡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지 않는다. 탈옥을 감행해 한양으로 몽룡을 찾아간다. 그런데 아뿔싸, 몽룡의 ‘학업 성취도’가 문제였다. 과거에서 계속 낙방하는 바람에 오지 못한 것이다. ‘내 사랑은 내가 책임진다’는 춘향은 몽룡을 방에 가두고 공부를 시킨다.
“이몽룡은 요즘으로 치면 고시원에 틀어박혀 공부하는 거잖아요. 고시원 패션을 생각하다 보니 야구 점퍼 차림이 떠올랐어요. 변사또도 굉장히 중요한 인물인데, 재판장 같은 이미지가 떠오르더라고요. 그래서 좀 길게 떨어지는, 재판장이 입는 법복 스타일로 만들었어요.”

감각의 원천, 바르게 살기!

김리을은 평소에도 공연을 좋아하고 많이 보는 편이다. 어릴 때는 유명 가수들의 콘서트를 많이 봤다 했다. 김덕수, 고영열 등 예술가의 무대의상을 종종 디자인했다. 하지만 오페라 공연의 의상을 맡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오페라 연습을 본 소감이 어땠냐는 질문에 그는 ‘심오하더라’고 대답하며 웃었다. 오페라 <춘향 2020>의 의상디자이너 김리을을 만난 것이었지만,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김리을이란 사람’에 대해 호기심이 계속 생겼다. 그가 내놓은 한복 정장과 광고, 그가 기획한 행사를 보면 트렌드를 선도하는 탁월한 ‘감각’이 돋보인다. 이런 감각은 어디서 왔을까. 원래부터 타고난 걸까. “글쎄요, 바르게 사는 것이라고 해야 할까요. 기쁘게 살고. 스트레스도 별로 안 받고. 그러니까 정신적으로 건강하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아, 내가 예쁘다, 멋있다, 하는 게 대중적으로도 통하는 것 같아요.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디자인하니까 다른 사람들도 비슷하게 좋아해주고 그런 거 아닐까 싶어요.”

‘바르게 살아온 덕분’이라는, 예상 외의 답이 나왔다. 그는 ‘내가 바르게 살면 세상은 나의 성공을 위해 돌아간다’고 믿으며 산다고 했다. 그동안 힘들거나 고비였던 적은 없을까. 그는 없었다고 했다. 그럼 지금까지 계속 승승장구, 탄탄대로만 걸어온 건가. “남들이 실패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 실패라고 생각 안 해요. 대학교 1학년 때 창업했을 당시 찜질방에서 200일 동안 숙식하면서 지내기도 했죠. 어려울 때가 당연히 있었죠. 브랜드 ‘리을’도 제가 몇 년 동안 사업해서 번 돈을 다 쏟아부었지만 따로 판매를 하고 있지는 않아요. 그래도 크게 걱정 안 해요. 투자도 받게 됐고요.”

예술의전당이 제작하는 로맨틱코미디오페라 . 자유소극장에서 개막을 앞둔 공연이다.

김리을 디자이너의 작업은 바르고 긍정적인 삶의 태도에서 시작된다. ⓒ이보영

그는 어릴 때부터 각종 사고와 질병으로 병원에서 보낸 시간이 많았다고 한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높은 곳에 올라가 자전거를 타고 날아보려 하다가 떨어져 크게 다쳤다. 영화 <ET>에 나온 ‘자전거를 타고 날아 올랐던 장면’을 재현해보려다 생긴 일이었다. 6개월 동안 병원에서 지냈다. 그래도 다시 학교로 돌아가 지내는데 큰 문제는 없었다고 한다. 걱정해봤자 소용없고, 불운이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지는 못한다는 걸 깨달으면서, 긍정적 태도와 자신감을 체화했는지도 모른다. 기발한 아이디어가 많았던 김리을은 고등학교 때 풀칠할 때 풀이 묻어나는 현상을 개선한 디자인 ‘풀뚜껑’을 발명하며 지식재산권을 등록했다. 그가 지식재산권을 등록한 발명품만도 10건이 넘는다고 했다. 특히 발명품 ‘풀뚜껑’은 각종 경진대회를 휩쓸고 지원금도 받게 해주면서 대학 재학 시절 ‘조기 창업’의 밑거름이 되었다.

명품 한복 꿈꾸는 디자이너

자신의 광고 회사를 정리하고 티엘엑스에 합류해 리을사업부를 만들어 그 회사에 들어가 일하다가, 최근 1인 기업을 세워 다시 독립했다. 한복 정장을 시작하면서 만든 브랜드 ‘리을’을 본격적으로 키울 계획이다. ‘리을’은 한글의 ‘ㄹ’에서 따왔다. 외국인들도 한글의 우수성은 알고 있는 데다, ‘ㄹ’은 생김새가 숫자 ‘2’와 비슷해서 친숙하게 느낀다고 한다. 세계인이 아는 한국의 명품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는 소망이 담겼다. 지금까지 한복 정장을 200벌 이상 만들었으면서도 판매는 하지 않았는데, 앞으로는 일반인에게 판매할 계획도 있다. 또 면세점에 한국적이고 세련된 패키지에 담은 홍삼 제품을 리을 브랜드로 납품하기 시작했다. 앞으로도 한국적 명품을 계속 개발하려 한다.

그에게 ‘디자인’이란, ‘김리을의 눈으로 바라보고, 김리을의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관객들은 <춘향 2020>에서 김리을의 눈으로 바라보고, 김리을의 방식으로 표현한 무대의상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21세기 춘향에게 21세기 한복을 입히겠다는 김리을. 그에게 ‘디자인’은 한복 정장에만 그치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도 디자이너 김리을의 행보를 주목하게 될 것 같다.

김수현 SBS 정책문화부 선임기자
공연 취재하며 BTS도, 조성진도 쓴다. SBS 공연문화 팟캐스트 <커튼콜>을 진행하고 있다. 영국에서 문화정책과 예술경영을, 중국에서 중국학을 공부했다. 기자 업무뿐 아니라 포럼 기획과 문화사업 등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공연 관람과 수다, 피아노, 중국 문화, 고양이 키우기에 관심이 많다. 쓴 책으로 『나도 가끔은 커튼콜을 꿈꾼다』, 『천재들의 유엔 TED』가 있다.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soohyunkim0423
트위터 https://twitter.com/100curtaincalls

로맨틱코미디오페라 <춘향 2020>

기간 2020.8.29(토)~2020.9.2(수)
시간 화~수 7:30PM/ 토~일 3PM *월 공연 없음
장소 자유소극장
관람등급 8세 이상 관람
관람시간 80분
장르 오페라
가격 일반석 5만 원
주최 예술의전당
문의 02-580-1300

※ 감염병 위기경보 단계 변화 및 확산 추이에 따라 일정이 변경될 수 있습니다.                    사전에 예술의전당 홈페이지를 통해 관련 안내를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