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ME TALK

팬데믹 시대의 예술,
새로운 예술 감상의 시작

ⓒ셔터스톡

‘팬데믹(Pandemic)’이라는 단어를 네이버 사전에서 찾아보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전염병이 전 세계적으로 크게 유행하는 현상. 또는 그런 병. 보통 제한된 지역 안에서만 발병하는 유행병과는 달리 두 개 대륙 이상의 매우 넓은 지역에 걸쳐 발병한다.” 지금까지 우리에게 생경했던 ‘팬데믹’이라는 단어가 다양한 매체를 통해 하루에도 여러 차례 들려온다. 그렇다. 지금은 전 세계를 휩쓴 ‘역병의 시대’인 것이다.

‘팬데믹’이라는 단어가 다양한 매체를 통해 하루에도 여러 차례 들려온다. 그렇다. 지금은 전 세계를 휩쓴 ‘역병의 시대’인 것이다.

중세 시대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흑사병. ⓒ셔터스톡

솔직히 영화 속에서나 벌어지는 상상의 사건인 줄 알았다. 아니, 설령 사실이라고 해도 역사책 속에만 존재했던 과거의 사건이라고만 여겼다. 달에 인간을 보내고 대부분의 질병을 정복한 21세기에 역병이 전 세계를 휩쓸게 되리라는 것을 누가 상상이나 해보았을까? 그리고 그 예방 방법이 사회적 격리와 마스크 쓰기뿐이라는 것은 더더군다나. 지난해 연말부터 슬금슬금 퍼지기 시작해 올봄 폭발적으로 확산된, 그리고 여전히 그 위세가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 ‘코로나19’라는 ‘역병’ 속 세계는 여전히 다른 차원의 세계에서 일어난 일인 듯, 생소한 풍경과 일상으로 다가온다.

물론 1백 년 전에도 세계를 휩쓴 역병이 있었다. 스페인 독감이라 불렸던 인플루엔자는 전 세계 인구의 27퍼센트인 5억 명을 감염시켰고, 1천7백만 명에서 최대 1억 명을 죽음으로 몰았다. 이렇듯 역사 속에서 역병은 분명히 존재했다. 우리가 기억 속에서 지워버리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예술은 이 역병들을 자신만의 화법으로 묵묵히 기록하고 증언했다.

‘팬데믹’이라는 단어가 다양한 매체를 통해 하루에도 여러 차례 들려온다. 그렇다. 지금은 전 세계를 휩쓴 ‘역병의 시대’인 것이다.

질 르 뮈지, <1349년 투르네의 흑사병>, ⓒRoyal Museums of Fine Arts of Belgium, 벨기에왕립미술관

다양한 형상으로 역병을 증언하다

14세기를 휩쓴 흑사병은 아마 세계 역사에서 가장 악명이 높은 전염병 중 하나일 것이다. 1347년부터 1351년까지 4년간 7천5백만 명부터 최대 2억 명의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 이후에도 이 흑사병은 간간히 세계 역사 속에서 기승을 부렸다. <1349년 투르네의 흑사병>이라는 그림은 바로 그 당시에 그려졌다. 사람들은 시신을 묻기 위해 땅을 파고 관을 내려놓는다. 끊임없이 관들이 도착하고 있다. 이 흑사병은 아예 세계의 패러다임을 바꾸어버렸다. 역병으로 인구가 감소하고 신에 대한 믿음이 역병을 퇴치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자, 사람들은 다시 과거(그리스와 로마 시대)와 신이 아닌 인간 자신으로 관심의 눈을 돌렸다. 바로 중세에서 르네상스로의 대전환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당시 사람들은 역병에 대한 구원을 미술 작품을 통해 이루고자 했다. 망자를 추모하는 그림들을 교회에 봉헌한 것이다. 이러한 결과 미술 작품들이 증가하고 기술적인 면에서도 발전을 이루는 역설적인 상황 또한 발생했다.

‘팬데믹’이라는 단어가 다양한 매체를 통해 하루에도 여러 차례 들려온다. 그렇다. 지금은 전 세계를 휩쓴 ‘역병의 시대’인 것이다.

피터르 브뢰헐, <죽음의 승리>, 1562, 117×162cm, 패널에 유채 ⓒMuseo del Prado, 프라도미술관

이 시대에 그려진 대표적인 작품으로 피터르 브뢰헐의 <죽음의 승리>를 꼽을 수 있다. 스페인 마드리드의 프라도미술관에 소장된 이 작품은 1562년인 16세기에 그려졌다. 우리에게는 플랑드르 지방의 풍속화로 잘 알려진 피터르 브뢰헐은 당시 선배 화가였던 히에로니무스 보슈가 그린 이른바 기괴한 환상화 계열도 종종 그렸는데, 이 작품도 역시 다양하고 기묘한 등장인물들로 화면이 채워져 있다. 죽음의 사자들이 마을로 몰려와서 주민들을 습격하는 장면을 담고 있다. 해골 형태의 죽음은 왕과 성직자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을 습격하고, 사람들은 허둥지둥 도망가고 있다. 14세기부터 만연했던 역병을 화가들은 이러한 방식으로 증언했다.

‘팬데믹’이라는 단어가 다양한 매체를 통해 하루에도 여러 차례 들려온다. 그렇다. 지금은 전 세계를 휩쓴 ‘역병의 시대’인 것이다.

쥘 엘리 들로네, <로마의 페스트>, 1869, 131×176.5cm, 캔버스에 유채 ⓒOrsay Museum, 오르세미술관

역병의 근원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 성과가 이루어지는 19세기 말 이후에도 화가들은 다양한 화풍으로 묘사했다. 파리 오르세미술관에 소장된, 1869년도 쥘 엘리 들로네의 <로마의 페스트>는 로마에 창궐한 페스트를 그린 것이다. 작가는 1476년 로마 산 피에트로 교회에 그려진 프레스코화를 모티프로 이 작품을 그렸다. 화면 속 거리에는 사람들이 죽어 있고 천사와 죽음의 정령은 어느 집 문을 향하고 있다. 그리고 어둡게 그려진, 저 멀리 말을 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동상이 보인다. 낭만적인 화풍으로 묘사된 그림이지만 화면 곳곳에서 역병이 그은 삶과 죽음의 경계가 암울하게 드러난다.

‘팬데믹’이라는 단어가 다양한 매체를 통해 하루에도 여러 차례 들려온다. 그렇다. 지금은 전 세계를 휩쓴 ‘역병의 시대’인 것이다.

아르놀트 뵈클린, <페스트>, 1898, 149.8cm×105.1cm, 목판에 템페라 ⓒKunstmuseum Basel, 바젤미술관

‘팬데믹’이라는 단어가 다양한 매체를 통해 하루에도 여러 차례 들려온다. 그렇다. 지금은 전 세계를 휩쓴 ‘역병의 시대’인 것이다.

에드바르 뭉크 <스페인 독감 이후의 자화상>, 1919, 150.5cm×131cm, 캔버스에 유채 ⓒNational Museum of Art, Architecture and Design, Oslo, 노르웨이국립미술관

‘팬데믹’이라는 단어가 다양한 매체를 통해 하루에도 여러 차례 들려온다. 그렇다. 지금은 전 세계를 휩쓴 ‘역병의 시대’인 것이다.

에곤 실레, <가족> 1918, 1918, 152cm×162.5cm, 캔버스에 유채 ⓒBelvedere Palace, 벨베데레궁전

1898년 제작된 아르놀트 뵈클린의 <페스트>에서는 기괴한 인간의 형상으로 표현된 ‘죽음’이 날개 달린 괴수에 올라 중세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다. 작가는 1898년 인도 뭄바이에 창궐한 페스트에 대한 신문 기사를 읽고 이 그림을 그렸다. 뭉크는 20세기 초 세계를 휩쓸던 스페인 독감에 걸렸는데, 그런 자신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자화상으로 남겼다. 1919년이었다. 그 전 해인 1918년, 오스트리아의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는 이 스페인 독감을 피하지 못하고 목숨을 잃었다. 1918년 <가족>이라는 마지막 작품을 남긴 에곤 실레 또한 스페인 독감으로 사망하고 말았다. 뭉크는 이 역병을 극복했고, 병마 이후의 모습을 작품으로 남길 수 있었다.

‘팬데믹’이라는 단어가 다양한 매체를 통해 하루에도 여러 차례 들려온다. 그렇다. 지금은 전 세계를 휩쓴 ‘역병의 시대’인 것이다.

코로나19를 주제로 한 뱅크시 작가의 그라피티 작품. ⓒ뱅크시 공식 사이트(https://www.banksy.co.uk)

‘코로나19’의 시대가 되면서 미술 작품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소재가 바로 ‘마스크’일 것이다. 최근 그려진 거리의 벽화나 그라피티를 보면 등장인물에 마스크를 덧입히거나 세계 명화의 인물에 마스크를 씌우면서 ‘팬데믹’ 시대에 우리가 행해야 할 행동 지침을 미술의 시각적 환기를 통해 드러내고 있다. 얼마 전에는 ‘얼굴 없는’ 그라피티 작가인 뱅크시가 런던 지하철에서 벌인 마스크를 잘 쓰자는 내용의 그라피티 퍼포먼스를 SNS를 통해 공개하기도 했다.

팬데믹 시대의 비대면 예술 감상

코로나19 시대의 예술 세계에서 가장 크게 변화한 풍경은 바로 비대면 감상 방식으로의 전환일 듯싶다. 내용보다는 형식적 측면의 변화라고 하겠다. 공연 분야에서 가장 먼저 이러한 비대면 감상의 방식을 적용했다. 현장감이 중요한 예술계에서 고육지책의 방법이었지만, 다양한 플랫폼을 통한 공연의 실시간 중계는 팬데믹으로 한동안 중단된 공연에 목말라 있던 관객들의 욕구를 채워주었다. 미술 분야에서도 코로나19로 인해 전시장의 문이 닫혔는데, 이미 만들어진 전시의 경우에는 영상으로 전시를 소개하는 방법이 사용됐다. 여기서 좀 더 나아간 방식이 VR(Virtual Reality) 전시다.

‘팬데믹’이라는 단어가 다양한 매체를 통해 하루에도 여러 차례 들려온다. 그렇다. 지금은 전 세계를 휩쓴 ‘역병의 시대’인 것이다.

VR 전시로 진행된 <오감도(五感圖): 한국미술의 다섯 풍경>.

필자 또한 한국과 아랍에미리트의 수교 40주년 기념 전시를 기획하던 중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하고 말았다. <오감도(五感圖): 한국미술의 다섯 풍경>(www.artogamdo.com)이라는 이름으로, 동시대 한국미술을 아랍에미리트에 소개하는 전시였다. 해외 교류가 막힌 상황에서 고민하다 VR 전시 방식으로 방향을 틀었다. 현장감 있는 전시의 형태로 관객에게 소개할 수 없다는 아쉬움이 들었지만, 대부분의 교류 전시가 취소되는 상황에서 차선책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팬데믹’이라는 단어가 다양한 매체를 통해 하루에도 여러 차례 들려온다. 그렇다. 지금은 전 세계를 휩쓴 ‘역병의 시대’인 것이다.
‘팬데믹’이라는 단어가 다양한 매체를 통해 하루에도 여러 차례 들려온다. 그렇다. 지금은 전 세계를 휩쓴 ‘역병의 시대’인 것이다.

팬데믹 시대, 새로운 방식의 온라인 전시.

하지만 결과적으로 또 다른 전시의 형태를 발견했다고 할까. 하나의 공간에서 보여주는 제한된 형태의 전시 또한 장소성이라는 개념에서 의미가 있지만, 오프라인 전시와 비슷한 체험을 할 수 있는 VR 전시를 온라인으로 공개하면서, 전 세계의 미술 애호가들이 이 전시를 만날 수 있다는 장점을 발견했다. 여기에 시간에 구애 없이 자유로이, 자세히 전시를 볼 수 있다는 점도 전시를 준비하면서 발견한 장점이다. 기술적 요소를 도입해 오프라인 전시와는 다른, 전시 속에 다양한 변화도 줄 수 있었다.

‘팬데믹’이라는 단어가 다양한 매체를 통해 하루에도 여러 차례 들려온다. 그렇다. 지금은 전 세계를 휩쓴 ‘역병의 시대’인 것이다.
‘팬데믹’이라는 단어가 다양한 매체를 통해 하루에도 여러 차례 들려온다. 그렇다. 지금은 전 세계를 휩쓴 ‘역병의 시대’인 것이다.

전시장과 작품을 담은 VR 화면.

물론 예술이 주는 현장감, 공연의 생생함, 시각예술 작품을 오감으로 느끼는 확장성은 예술을 감상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다. 그러나 현재의 팬데믹 시대에 서로의 피해를 줄이면서 예술을 즐기는 데에 이러한 비대면 예술 감상 방식 또한 적극적으로 수용할 필요가 있을 듯싶다.

과거에도 결국 인간은 역병을 극복했다.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역병은 새로운 시대상을 만들어냈다. 흑사병이 중세에서 르네상스로 변화시켰듯이 이 암흑 같은 코로나19의 시대를 극복하면 새로운 예술의 패러다임이, 우리가 미래상으로만 상상했던 예술의 세계가 우리 앞에 훌쩍 다가와 있을 게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코로나19를 빨리 극복해야 하지만.

글 류동현 미술 저널리스트, 페도라 프레스 편집장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와 성균관대 언론정보대학원을 졸업했다. 미술전문지 『아트』와 『월간미술』에서 기자로 재직했고, 문화역서울 284에서 전시 큐레이터를 역임했다. 현재 페도라 프레스 편집장, 미술 저널리스트, 전시 기획자로 활동하며,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출강하고 있다.

로맨틱코미디오페라 <춘향 2020>

기간 2020.8.29(토)~2020.9.2(수)
시간 화~수 7:30PM/ 토~일 3PM *월 공연 없음
장소 자유소극장
관람등급 8세 이상 관람
관람시간 80분
장르 오페라
가격 일반석 5만 원
주최 예술의전당
문의 02-580-1300

※ 감염병 위기경보 단계 변화 및 확산 추이에 따라 일정이 변경될 수 있습니다.                    사전에 예술의전당 홈페이지를 통해 관련 안내를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