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POINT

음악이 주는 치유의 힘,
팬데믹 시대 클래식 음악 처방전

사람들은 늘 무엇을 시작하기 위한 ‘적기’를 기다린다. 그리고 사실 언제나 가장 좋은 적기는 바로 ‘지금’이다. 특히나 사회적 거리두기의 여파로 각자의 시간을 채워가고 있는 요즘, 감히 지금이 클래식 음악에 입문하기 위한 적기라고 말하고 싶다. 느긋한 나만의 시간과 커피 한 잔, 그리고 무대를 상상할 수 있는 능력만 있으면 모든 준비는 끝난다. 마치 나를 위한 새로운 조립식 장난감을 만나듯 설레는 마음으로 설명서를 펼쳐 들고, 순서대로 단계를 따라가면 된다.

2020년 클래식 음악계의 주제어

2020년은 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맞이하는 해다. 클래식 음악계는 올해를 기념하기 위해 오래전부터 분주했다. 독주곡부터 협주곡, 실내악, 교향곡에 이르기까지 한 해 동안 그의 음악으로 많은 클래식 음악 무대가 채워질 예정이었다. 위대한 클래식 음악 작곡가의 탄생과 서거를 기념하는 프로젝트는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지만, 베토벤의 경우에는 더욱 특별했다. 음악학자 존 J. 샤인바움의 표현대로 “베토벤은 클래식 음악 전체를 떠받치는 지렛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작년부터 세계 곳곳에서 축제를 준비하며 기다리는 들뜬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2020년 클래식 음악계의 주제어는 베토벤이 아니다. 무대는 침묵하고 관객석은 비워졌다. 베토벤 대신 매일같이 듣게 되는 이름은 이젠 베토벤의 이름만큼 익숙하게 된 코로나19다.

2020년 클래식 음악계의 주제어는 베토벤이 아니다. 무대는 침묵하고 관객석은 비워졌다. 베토벤 대신 매일같이 듣게 되는 이름은 이제는 베토벤의 이름만큼 익숙하게 된 코로나19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정서적 치유가 필요한 시기.

정서적 안전망의 필요성

지구촌이라는 말이 요즘같이 실감 나는 때는 없었다.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일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고, 인터넷을 통해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즉각적으로 소통할 수 있게 된 지는 이미 오래다. 그렇지만 전쟁과 기근 등 지구 한편의 누군가에게는 급박한 현실이 반대편 누군가에게는 피부에 와닿지 않는 상황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번 코로나19는 그야말로 전 세계인의 생존을 동시에 위협하고 있다. 일상생활의 급격한 변화와 지속되는 감염병의 공포는 정신 건강 또한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 불안감이 빠르게 전파되는 가운데, ‘코로나 블루’라는 우울감과 무력감에 많은 이들이 시달리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정서적 안전망이 필요하다.

2020년 클래식 음악계의 주제어는 베토벤이 아니다. 무대는 침묵하고 관객석은 비워졌다. 베토벤 대신 매일같이 듣게 되는 이름은 이제는 베토벤의 이름만큼 익숙하게 된 코로나19다.

흑사병 퇴치 염원을 담아 건축한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 성당.

유럽의 흑사병과 베네치아의 살루테 성당

감염병의 대유행은 과거에도 존재했다. 유럽을 휩쓸었던 흑사병이 대표적이다. 16~17세기 유럽 음악의 중심지이자 무역의 중심지였던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에도 아픈 역사가 있다. 베네치아는 협주곡의 탄생지이자 오페라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 도시이며, 흑사병이 유행할 때 외부에서 들어오는 배에 대해 세계 최초로 40일간 격리 조치를 한 도시이기도 하다. 예술과 무역의 중심지였던 만큼 많은 사람이 오가면서 감염병의 위험에 더 많이 노출됐던 베네치아에서는 1630년경 흑사병으로 인구의 3분의 1가량이 목숨을 잃었다. 그러면서 흑사병의 퇴치를 기원하기 위해 성모마리아에게 바치는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 성당을 1631년부터 짓기로 했다. ‘살루테(Salute)‘는 ’건강‘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완공되기까지는 50년이 걸렸지만, 공사를 시작하며 흑사병이 수그러들어 성당에 각별한 의미가 더해졌다. 살루테 성당은 회복에 대한 감사를 기념하는 명소로도 유명하다.

2020년 클래식 음악계의 주제어는 베토벤이 아니다. 무대는 침묵하고 관객석은 비워졌다. 베토벤 대신 매일같이 듣게 되는 이름은 이제는 베토벤의 이름만큼 익숙하게 된 코로나19다.

성당 안에서 은밀하게 연주된 ‘미제레레 메이’.

봉인된 음악 ‘미제레레 메이’

1630년경에 이탈리아 북부에 퍼진 흑사병의 여파로 나라 전체가 휘청거린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로마에서 특별한 음악이 탄생했다. 1638년에 로마 교황청 소속의 작곡가인 그레고리오 알레그리는 참회하는 내용의 『시편』 51편을 가사로 하는 ‘미제레레 메이(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를 수난절 예배를 위해 작곡했다. 이 음악은 폐쇄적이었던 교황청의 지시에 따라 시스티나 성당 외에서의 연주나 악보의 유출이 철저히 금지됐다. 이 비밀스러운 음악을 훗날 14세의 모차르트가 듣고 악보에 그대로 옮겨 적은 일화는 유명하다. 작품의 분위기는 신비롭고 성스럽다. 특별히 독창 성부에서 높이 솟아오르는 청아한 C음에는 하늘에 닿을 만큼 간절한 염원이 담겨 있는 듯하다. 고난을 묵상할 때 연주되던 이 ‘미제레레 메이’는 정화된 아름다움으로 슬픔에 잠긴 이들에게 위로의 손길을 내민다.

공연명
Allegri – Miserere mei, King’s College, Cambridge

격리된 작곡가 베토벤

‘미제레레 메이’처럼 들리는 음악을 끝내 비밀에 부칠 수는 없다. 그러나 베토벤은 소리가 들리는 세상에서 격리된 작곡가였다. 청력을 잃은 그는 세상에 없던 소리를 창조해냈다. 교향곡 제9번 ‘합창’도 외부의 소리가 완전히 차단된 상태에서 작곡된 작품이다. 이러한 극적 반전 덕분에 그가 앓은 다른 병들에 대해서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2020년 클래식 음악계의 주제어는 베토벤이 아니다. 무대는 침묵하고 관객석은 비워졌다. 베토벤 대신 매일같이 듣게 되는 이름은 이제는 베토벤의 이름만큼 익숙하게 된 코로나19다.

올해 탄생 250주년을 맞은 위대한 작곡가 베토벤.

베토벤은 1823년 봄부터 눈병이 악화되어 시력 상실까지도 걱정해야 했다. 극심한 복통은 평생 그를 따라다녔고, 과도하게 포도주를 즐기던 생활은 다른 병들을 더욱 키웠다. 이런 와중에도 ‘합창’ 교향곡을 완성하고 후기 현악사중주를 써 내려가던 그는 1825년에 ‘현악사중주 A단조, Op. 132’의 첫 두 악장을 마치고 건강이 급격히 악화됐다. 그의 삶의 유일한 이유였던 작곡마저 한 달 이상 중단해야 했다.

2020년 클래식 음악계의 주제어는 베토벤이 아니다. 무대는 침묵하고 관객석은 비워졌다. 베토벤 대신 매일같이 듣게 되는 이름은 이제는 베토벤의 이름만큼 익숙하게 된 코로나19다.

가혹한 병마를 이겨낸 후에도 작곡을 이어간 베토벤.

병에서 회복된 이가 신에게 드리는 감사의 노래

의사의 처방에 따르며 바덴에서 휴식을 취한 후 상태가 호전된 베토벤은 다음 악장의 작곡을 시작했다. 이 악장이 “병에서 회복된 이가 신에게 드리는 감사의 노래, 리디아선법으로”라고 이름 붙인 3악장이다. 중세 교회 선법인 리디아선법을 사용한 코랄이 나오는 곡의 첫 부분은 예스럽고 경건한 분위기다. “새로운 힘을 느끼면서”라고 표기된 부분에서는 홀가분한 해방감과 역동적인 생명력이 전해진다. 활기찬 트릴은 낙천적으로 분위기를 환기한다. 삶의 근간을 흔드는 역경을 만날 때마다 힘겨운 투쟁을 통해 극복해왔던 베토벤은 이 악장에서 한계를 뛰어넘는 다른 차원의 방식을 보여준다. 그것은 수용과 초월의 길이다. “가장 깊은 정서로”라고 표기된 마지막 부분에서는 간곡함과 경건함이 더해지며 감사와 안식에 이른다.

2020년 클래식 음악계의 주제어는 베토벤이 아니다. 무대는 침묵하고 관객석은 비워졌다. 베토벤 대신 매일같이 듣게 되는 이름은 이제는 베토벤의 이름만큼 익숙하게 된 코로나19다.

공연명
Beethoven: Quartet in A minor for Strings, Op. 132, Movement III.

가둘 수 없는 음악과 정신

‘미제레레 메이’와 베토벤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 음악과 정신은 봉인하거나 격리할 수 없다. 나치의 강제수용소에서 살아남아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을 쓴 빅터 프랭클 박사는 이렇게 말했다. “자극과 반응 사이에는 공간이 있다. 그 공간에는 우리의 반응을 선택할 수 있는 힘이 있다. 우리의 반응에 우리의 성장과 자유가 존재한다.” 시공을 초월해 사람들의 마음에 닿는 음악은 바로 우리 안에 있는 이 공간의 가능성을 일깨워준다. 움츠러든 마음과 좁아진 시야를 확장시킨다.

2020년 클래식 음악계의 주제어는 베토벤이 아니다. 무대는 침묵하고 관객석은 비워졌다. 베토벤 대신 매일같이 듣게 되는 이름은 이제는 베토벤의 이름만큼 익숙하게 된 코로나19다.

아름다운 울림은 전파력이 강하다. 베네치아 산마르코 광장의 종.

참혹한 현실 속에서도 그 너머를 바라볼 수 있는 영혼의 자유는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우리 고유의 것이다. 단번에 높은 C음으로 도약하는 ‘미제레레 메이’의 선율과 새로운 힘으로 살아나는 베토벤의 음악이 보여주듯이. 어떠한 거리두기로도 음악으로 마음과 마음이 이어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가까운 거리에서 소리의 떨림과 서로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날이 머잖아 오기를 기다린다.

이미지 출처 서주원, 유튜브

글 서주원 음악 평론가
음악에 대한 글을 쓰며 인간과 예술에 대해 끊임없이 고찰하고자 한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예술전문사 과정에서 음악학을 전공했고, 한양대학교 음악대학 서양음악사 전공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객석」, 「피아노 음악」, 「스트링 앤 보우」 등 다양한 잡지에 연주회 리뷰와 작곡가·작품 분석 시리즈, 음악가 인터뷰, 음악 에세이 등을 기고했다. 2016년도 화음 평론상을 수상했다. 음악이라는 아름다운 질서 속에서 자유롭기를 꿈꾼다.

로맨틱코미디오페라 <춘향 2020>

기간 2020.8.29(토)~2020.9.2(수)
시간 화~수 7:30PM/ 토~일 3PM *월 공연 없음
장소 자유소극장
관람등급 8세 이상 관람
관람시간 80분
장르 오페라
가격 일반석 5만 원
주최 예술의전당
문의 02-580-1300

※ 감염병 위기경보 단계 변화 및 확산 추이에 따라 일정이 변경될 수 있습니다.                    사전에 예술의전당 홈페이지를 통해 관련 안내를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