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ME TALK

불가분의 관계, 음악과 문학
베토벤과 톨스토이의 <크로이처 소나타>

해설이 있는 음악 시리즈 ②
광기 어린 소나타를 작곡한 베토벤(왼쪽)과 그에 영감을 받아 소설을 쓴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

분노와 질투의 소나타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는 진정한 예술이란 사람을 하나의 공통된 감정으로 묶을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창작자와 감상자가 서로의 감정을 나누어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예술이 훌륭한 예술이며, 그렇지 않고 어떤 특정한 부류의 사람을 소외시키는 예술은 진정한 예술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기준에서 톨스토이는 그동안 우리가 명작이라고 믿어왔던 수많은 작품을 비판했다. 그중에는 불후의 명작이라 일컬어지는 베토벤의 ‘합창교향곡’도 있다. 톨스토이에 의하면, 베토벤은 실러의 시까지 동원해 인간의 사랑과 기쁨의 감정을 표현하려 했지만 음악과 시에 담긴 사상이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작곡가의 감정을 청자들에게 전달하는 데에도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소수의 사람을 결합함으로써 그들과는 다른 대부분의 사람을 소외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불가분의 관계, 음악과 문학 베토벤과 톨스토이의

수많은 명작을 진정한 예술이 아니라며 비난했던 작가 톨스토이.

톨스토이의 소설 중에 『크로이처 소나타』라는 것이 있다. 여기서 ‘크로이처 소나타’는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9번을 의미한다. 톨스토이는 이 작품을 통해 음악의 악마적인 힘과 반사회적이고 부도덕한 영향력에 대해 경고하고 있는데, 실제 ‘크로이처 소나타‘를 들으면 톨스토이가 하고많은 음악 중에서 왜 하필 이 곡을 선택했는지를 알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베토벤의 ‘크로이처 소나타’는 멜로디의 아름다움을 순수하게 즐길 수 있는 음악은 아니다. 특히 1악장이 그렇다. 그것은 부담 없이 아름다운 멜로디로 가득 차 있는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소나타와도 다를 뿐만 아니라 ‘크로이처 소나타’와 쌍벽을 이루고 있는 베토벤의 또 다른 바이올린 소나타 ‘봄’하고도 다르다. 세상을 향해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리는 상처받은 영혼의 음악이라고나 할까. 더블스토핑으로 느릿하게 시작하는 1악장의 도입부에서부터 이 음악은 섬뜩한 광기를 드러내고 있다. 바이올린과 피아노의 스타카토는 하늘을 향해 부상하는 성난 독수리의 거친 날갯짓을 연상케 한다. 날카로운 바이올린 소리는 우리의 예민한 감성을 신경질적으로 건드리며 질주하고 탄식한다. 베토벤의 가슴속에 이토록 난폭한 증오와 분노가 숨어 있었던가. 세상을 향해 내뿜어야 할 독기(毒氣)가 그토록 많았던가.

불가분의 관계, 음악과 문학 베토벤과 톨스토이의
불가분의 관계, 음악과 문학 베토벤과 톨스토이의

‘크로이처 소나타’는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중 최고 걸작으로 꼽힌다.

톨스토이는 이런 ‘크로이처 소나타’의 악마적인 분위기를 자신의 소설에 십분 활용하고 있다. 주인공이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는 독백 형식으로 이루어진 『크로이처 소나타』의 첫 장면은 기차에서 시작된다. 같은 칸에 동석한 한 귀부인과 변호사가 결혼과 사랑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다. 그들은 사랑에 의해 정화된 결혼만이 참된 결혼이고 사랑이 없는 결혼은 그 자체가 무의미하기 때문에 이혼을 통해서라도 참다운 사랑을 다시 찾아야 한다는 데에 의견의 일치를 본다. 그러나 그들은 곧 그 자리에 합석한 늙은 상인의 반대에 부딪히게 된다. 그는 과거에는 여인들이 결혼을 자신의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남편에게 순종하며 살았다고 하면서 너무나 빨리 변화해가는 세상을 한탄한다.

늙은 상인이 기차에서 내리고 난 후, 한쪽 구석에 앉아 있던 남자가 그들의 대화에 뛰어든다. 어딘지 모르게 불안한 기색을 한 이 남자는 사랑으로 맺어진 이상적인 결혼을 주장하는 그들에게 그들이 말하는 사랑이 무엇인지 묻는다. 그는 자신의 경험으로 비추어 볼 때 정신적 결합을 기반으로 한 사랑이나 결혼은 불가능한 것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포즈드니세프라는 이름의 이 남자는 갑자기 자기가 아내를 살해했다고 고백한다. 그런 다음 서로에 대한 존경이나 이해 없이 증오와 불신으로 가득 차 불행하기만 했던 자신의 결혼생활에 관해 얘기하기 시작한다.

불가분의 관계, 음악과 문학 베토벤과 톨스토이의

기차 안 러시아 귀족이 승객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톨스토이의 『크로이처 소나타』.

건강이 좋지 못하다는 이유로 출산으로부터 해방된 그의 아내는 차츰 옛날의 아름다움을 되찾고, 한동안 손 놓았던 피아노를 다시 치기 시작한다. 바로 이 무렵 몰락한 지주의 아들 투르하체프스키가 파리 음악원에서 공부를 마치고 바이올리니스트가 되어 돌아온다. 포즈드니세프는 아내와 투르하체프스키의 2중주를 주선하고, 손님들을 초대해 이들의 연주를 들려준다. 이때 이 두 사람이 연주하는 곡이 바로 베토벤의 ‘크로이처 소나타’다.

그들은 베토벤의 ‘크로이처 소나타’를 연주했습니다. 첫 악장의 프레스토를 아세요? 아시냐고요?  으! 이 소나타는 정말로 무시무시한 음악입니다. 특히 이 부분은 더욱더 그렇습니다. 아니 음악은 정말로 무시무시한 것입니다. 그게 도대체 뭔가요? 저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음악의 악마적인 힘

톨스토이는 주인공의 입을 통해 1악장의 느린 도입부 후에 나오는 프레스토를 가리켜 ‘무시무시한 음악’이라고 했다. 왜 그랬을까? 마을 사람들을 초대해 연주회를 주관했음에도 불구하고 포즈드니세프의 가슴은 이 두 사람에 대한 병적인 의심과 질투로 가득 차 있다. 순식간에 타오르는 불꽃처럼 격렬한 더블스토핑으로 시작되는 1악장의 바이올린 도입부는 이들의 불행한 앞날을 예고하는 불길한 전주곡이 되고 있다. 음산한 바이올린 도입부에 피아노가 격렬한 화음으로 응답하고 나면 곧이어 바이올린과 피아노의 열정적인 2중주가 시작된다. 여기서 바이올린과 피아노가 토해내는 폭발적인 멜로디들은 첨예화된 부부의 갈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포즈드니세프는 마치 불륜의 현장을 보는 듯한 기분으로,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이들의 2중주 장면을 지켜본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그의 눈빛은 신성한 결혼의 법칙을 무시하는 부도덕한 사회에 대한 증오로 가득 차 있으며, 날카로운 맹수의 발톱처럼 폐부를 찌르는 바이올린 소리는 비명을 지르며 주인공의 복수심을 부추기고 있다.

불가분의 관계, 음악과 문학 베토벤과 톨스토이의

프랑스 화가 르네 프랑수아 자비에 프리네가 그린 동명의 그림. 1901년, 116.8×101.6cm, 캔버스에 유채, 개인 소장. ⓒ위키피디아

1악장의 마지막에서 곡은 팽팽한 긴장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폭발한다. 곡의 막바지로 접어들면서 음악이 조용해지지만 여기서 방심하면 안 된다. 마지막 일격(一擊)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바이올린과 피아노의 격렬한 폭발음은 예고도 없이 갑자기 들이닥친다. 이 갑작스러운 종지부는 문장이 끝났음을 알리는 마침표처럼 그렇게 단호하다. 불륜의 남녀를 응징하려는 포즈드니세프의 결심처럼.
포즈드니세프는 아내와 바이올리니스트의 관계에 참을 수 없는 질투심을 느낀 나머지 결국 일을 저지르고 만다. 자신이 없는 사이에 집에서 바이올리니스트와 함께 식사하고 있던 아내에게 칼을 휘두른 것이다. 그는 곧 살인죄로 기소되었으나 배신당한 남편이 자신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한 일이라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받는다.

음악은 그것을 작곡한 사람의 정신세계로 곧바로 저를 데려갑니다. 저는 작곡가와 영적으로 하나가 되어 그와 함께 이 상태에서 저 상태로 옮겨 다니는데 제가 왜 그렇게 되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크로이처 소나타’를 작곡한 베토벤은 왜 자신이 그런 상태에 있었는지 틀림없이 알고 있었을 테니까 그 상태가 의미가 있겠지만 제게는 별다른 의미가 없습니다.

불가분의 관계, 음악과 문학 베토벤과 톨스토이의

바이올리니스트 안네 소피 무터와 피아니스트 램버트 오키스의 ‘크로이처 소나타’ 연주 장면. ⓒ유튜브

불가분의 관계, 음악과 문학 베토벤과 톨스토이의

공연명
Beethoven.Violin.Sonata.No.9.Op.47.kreutzer.

포즈드니세프는 자기가 살인을 한 것은 베토벤의 음악 때문이라고 강변한다. 그는 음악의 최면적인 힘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바이올리니스트 투르하체프스키가 바로 그 음악의 힘으로 자신의 아내를 정신적으로 지배하고 있다고 생각하자 견딜 수 없는 불안과 증오가 엄습해 왔다. 그렇다. 그가 두려워한 것은 투르하체프스키라는 남자가 아니었다. 그 남자가 가지고 있는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무기, 바로 음악이었다. 그는 베토벤이 왜 이렇게 위험한 무기를 개나 소나 연주할 수 있도록 세상에 내놓았는지 불만이었다.

톨스토이 역시 ‘크로이처 소나타’를 들으며 그 악마적인 힘에 섬뜩함을 느꼈을 것이다. 자신의 존재를 밑바닥에서부터 흔들어놓는 음악의 힘에 공포를 느꼈는지도 모른다. 그는 자신의 도덕적 의지도, 이성도, 인생의 모든 현실도 녹아 사라져버리게 하는 음악의 힘을 두려워했다. 그가 동서고금의 모든 사람이 존경해 마지않는 베토벤을 비판의 도마 위에 올려놓은 것은 이런 두려움을 숨기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 아니었을까.

이미지 출처 셔터스톡, 위키피디아, 유튜브

글 진회숙 음악 평론가/ 음악 칼럼니스트
이화여자대학교 음악대학과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KBS, MBC를 비롯한 여러 방송국의 클래식 음악 프로그램 구성작가 및 진행자로 활동했다. 현재 클래식 관련 책을 집필하면서 대중을 대상으로 클래식 음악 강좌를 하고 있다. 저서로는 『클래식 오디세이』, 『영화와 클래식』, 『오페라』 등 다수가 있다.

로맨틱코미디오페라 <춘향 2020>

기간 2020.8.29(토)~2020.9.2(수)
시간 화~수 7:30PM/ 토~일 3PM *월 공연 없음
장소 자유소극장
관람등급 8세 이상 관람
관람시간 80분
장르 오페라
가격 일반석 5만 원
주최 예술의전당
문의 02-580-1300

※ 감염병 위기경보 단계 변화 및 확산 추이에 따라 일정이 변경될 수 있습니다.                    사전에 예술의전당 홈페이지를 통해 관련 안내를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