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ME TALK

언제라도 홀연히 떠나는
일상 속에서의 여행

아티스트들의 여행 시리즈 ②
ⓒ셔터스톡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가을, 국내 유명 아티스트들의 여행 이야기를 통해 그 시간, 그 공간 속으로 함께 떠나봅니다.

여행지를 기억하는 방식

사진기자라는 저의 직업의 특성 때문인지 많은 분이 제가 세계 각국을 여행하며 찍은 예쁜 풍경 사진을 많이 소장하고 있으리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직업상 전 세계 다양한 장소를 가볼 기회가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제가 주로 취재하는 대상은 재난 재해 혹은 사회적 갈등이 물리적 충돌로 이어지는 격한 현장인 경우가 한가하게 여행이라 부르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가을, 국내 유명 아티스트들의 여행 이야기를 통해 그 시간, 그 공간 속으로 함께 떠나봅니다.

2011년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유출 사태 취재 당시 모습. ⓒ김경훈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가을, 국내 유명 아티스트들의 여행 이야기를 통해 그 시간, 그 공간 속으로 함께 떠나봅니다.

퓰리처상을 수상하게 된 2018년 중남미 캐러밴(이민자 행렬) 문제 취재 당시 최루탄이 터진 현장의 취재 모습. ⓒ김경훈

저 역시 한때는 이국적인 여행지에서 아름다운 풍경 사진을 촬영하는 것을 즐겼던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기보다는 그 풍경을 눈으로 보고 마음속으로 기억하는 방식으로 아름다움의 여운을 간직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여행 사진에 대한 제 생각이 바뀌게 된 것은 2004년 그리스에서 열린 아테네올림픽을 취재한 뒤 그리스의 유명한 휴양지 산토리니섬을 여행한 것이 그 계기였습니다. 진한 물감을 풀어놓은 듯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파란 지붕과 순백색의 담벼락으로 지어진 집들이 빚어내는 풍경이 아름다운 산토리니섬. 어쩌면 여행 사진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여행을 가서 멋진 사진을 남기고 싶은 곳일 것입니다. 저 역시 그랬기에 며칠간의 짧지 않은 여정 중 긴 시간을 할애해 산토리니섬의 아름다운 석양을 배경으로 멋진 풍경 사진 찍기에 몰두했습니다.

하지만 나름 좋은 사진을 촬영했다고 생각했던 의기양양함은 다음 날 시내의 조그만 기념품 가게를 찾아간 뒤 무참히 깨지고 말았습니다. 우리 돈으로 장당 몇백 원에 판매하는 기념엽서들 속에는 내가 촬영한 것보다 몇 배는 멋지고 아름다운 사진들이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여행 사진을 촬영한다는 것은 누구보다 더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한 경쟁도 아니고 오롯이 자기만족을 위한 행위이지만 짧은 여행이라는 한정된 시간 동안 보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마주하고 싶은 것을 희생해가며 아름다운 풍경 사진을 찍는 것에만 몰두하는 것이 과연 의미 있는 행위일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경험이었습니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가을, 국내 유명 아티스트들의 여행 이야기를 통해 그 시간, 그 공간 속으로 함께 떠나봅니다.

여행 사진에 대한 관점을 바꿔준 그리스 산토리니섬 여행. ⓒ셔터스톡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 한 장소를 향한 한없는 애정을 바탕으로 오랜 시간 그곳에 머물며 가장 좋은 시간과 빛을 포착하기 위해 헤아릴 수 없는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은 사진가들의 노력에 비해 같은 곳에 짧은 시간 머물며 사진을 찍은 저의 결과물은 수박 겉핥기에 지나지 않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경험 뒤에는 여행 중에 유명한 촬영 포인트에 가서 당의정처럼 예쁘게 포장된, 깊은 의미 없는 풍경 사진을 찍으려고 노력하기보다는 나만이 경험할 수 있는 것, 나만이 느낄 수 있는 것을 사진으로 남기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일상 속 의미 있는 나만의 여행

같은 의미로 유명하고 이국적인 곳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도 좋아하지만 일상생활 속에서 시간이 날 때면 내가 사는 주변에서 나만이 느끼고 찾아낼 수 있는 ‘일상 속에서의 여행하기‘를 즐깁니다. 직장 관계로 2007년부터 살고 있는 일본의 도쿄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흔적을 찾아 나만의 ‘일상 속에서의 여행’을 즐기는 곳이기도 합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특유의 감성적이고 도회적인 문체, 환상과 현실이 혼합된 세계관,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한 독특한 주인공들의 캐릭터로 세계적인 팬덤을 형성하고 있는 작가입니다. 저 역시 대학교 시절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처음 접한 뒤 그의 소설과 에세이를 빠짐없이 읽으며 ‘하루키’적 감성에 푹 빠졌던 적이 있습니다.

13년 전 일본으로 근무지를 옮기게 될 때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 하루키의 문학 속에서 주된 배경이 되는 도쿄라는 곳에서 살게 된다는 사실에 약간의 흥분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무슨 인연인지 제가 일본으로 발령을 받아 처음 자리를 잡게 된 곳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의 무대 한복판이었습니다. 하루키 본인의 젊은 시절 모습이 반영된 이 소설에서 주인공 와타나베가 살던 기숙사는 실제로 하루키가 대학생 시절 머물렀던 사설 기숙사였는데, 그곳은 제가 살던 집에서 불과 몇 분 거리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제가 출퇴근길에 이용하는 지하철역을 빠져나와 집으로 올라가는 지름길에 있는 긴 돌계단 길은 대학교 신입생이던 하루키가 술에 엉망으로 취해버리면 그의 친구들이 가게의 입간판을 몰래 가져와 그를 태워 실어 나르던 길이었습니다. 그가 공부한 와세다대학교 안 작은 공원은 제가 즐겨 찾던 산책 코스였는데, 몇 년 전 『노르웨이의 숲』이 영화화될 때 두 남녀 주인공이 처음 데이트를 하는 무대가 되어 영화에 등장하기도 하였습니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가을, 국내 유명 아티스트들의 여행 이야기를 통해 그 시간, 그 공간 속으로 함께 떠나봅니다.

영화에서 여주인공 미도리가 누워 있던 벤치는 없지만 남주인공 와타나베가 등을 기대어 책을 읽던 바위는 변함없이 남아 있다. ⓒ김경훈

가난했던 신혼 시절, 무라카미 하루키가 더부살이하던 처가의 반지하방은 제가 살던 집과 회사 동료들과 자주 가던 단골 술집 중간 정도에 있었는데 하루키의 수필집에 의하면 이곳에서 그의 아내는 종종 유령을 목격했다고 합니다. 그러한 영향인지 하루키의 소설에는 유령 같은 존재가 심심찮게 등장하기도 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알고부터 동료들과 술을 한잔 걸친 뒤 자정이 넘어 홀로 집으로 걸어오다가 그 근처를 지날 때면 왠지 으스스하고 이상한 기분이 들고는 했습니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가을, 국내 유명 아티스트들의 여행 이야기를 통해 그 시간, 그 공간 속으로 함께 떠나봅니다.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흔적이 숨어 있는 도쿄. ⓒ셔터스톡

이러한 우연은 팬으로서의 호기심으로 발전하여 지금도 시간이 날 때면 도쿄 속 하루키의 흔적 찾기를 테마로 삼아 ‘도쿄 여행하기’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하루키가 전업 소설가가 되기 전 그는 ‘피터캣’이라는 제법 유명했던 재즈바를 운영했었는데 그곳은 수십 년이 지나면서 업종도 주인도 여러 번 바뀌었지만, 아직도 그 자리는 그대로 남아 있고 최근에는 스페인 식당으로 변신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에 『일각수의 꿈』(원제는 『세상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이란 제목으로 발간되었던 소설에서는 일각수(유니콘)가 중요한 모티프로 등장하여 많은 사람이 그 의미를 궁금해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이 소설을 집필하던 당시 무라카미 하루키는 마라톤을 본격적으로 시작을 했었는데 그가 즐겨 뛰던 조깅 코스에는 뿔이 하나가 난 말, 즉 일각수의 동상이 있습니다. 어쩌면 매일 이 동상 앞을 지나면서 무라카미 하루키는 일각수에 대한 소설을 창작해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가을, 국내 유명 아티스트들의 여행 이야기를 통해 그 시간, 그 공간 속으로 함께 떠나봅니다.

메이지진구가이엔(메이지신궁의 외원)에 세워져 있는 일각수의 동상. 이곳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골 조깅 코스였다고 한다. ⓒ김경훈

책이 발매되자마자 일본에서만 100만 부가 넘게 팔렸던 그의 또 다른 소설 『IQ84』에서는 도쿄의 명물인 2층으로 된 수도고속도로가 중요한 모티프로 등장합니다. 소설의 시작에서 여주인공 아오마메가 타고 있던 택시는 이 고속도로에서 심한 교통체증에 시달리게 되고 택시 기사는 그녀에게 지상으로 내려가는 비상계단을 알려줍니다. 결국 아오마메는 이곳을 통해 지상으로 내려오게 되는데 이 비상계단은 소설 속에서 그녀가 살던 1984년의 현실 세계와 약간 다른, 두 개의 달이 떠 있는 1Q84의 세계로 가는 출구였습니다. 그런데 이 비상계단은 제가 얼마 전 새로 이사한 집의 바로 코앞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쯤 되면 저와 하루키의 인연은 정말 끝이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아니면 하루키의 소설 세계에서 도쿄란 워낙 중요한 배경이고 그가 디테일의 묘사에 뛰어난 작가이다 보니 제가 어딜 가나 그의 소설 속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아무렴 어떻습니까? 제가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 세계 속 무대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은 소소한 ‘일상 속에서의 여행’이란 재미를 저에게 던져주고 있으니까요.

코로나19 바이러스 때문에 여행은커녕 이동도 쉽지 않은 지금, 여행을 좋아하는 많은 분이 집콕하느라 답답하시겠지요. 코로나19가 조금 진정된 뒤에 자신이 좋아하는 무언가를 테마로 생활 속 여행의 즐거움을 찾아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김경훈 사진기자
2019년 4월 캐러밴(중남미 이민행렬) 사태를 취재한 작품으로 미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보도상으로 꼽히는 퓰리처상을 한국인 최초로 받은 바 있으며, 올해에는 2020 세계보도사진전에서 3위를 수상하였다. 현재, 로이터통신의 도쿄지국 수석 사진기자로 근무하며 세계 각국의 뉴스를 취재하고 있다. 저서로는『사진을 읽어 드립니다』가 있다.

정리 예술의전당 웹진 편집팀
사진 김경훈, 셔터스톡

* 본 기사는 김경훈 사진기자와의 인터뷰를 토대로 작성되었습니다.

<10월의 어느 멋진 날>

기간 2020.10.30(금)
시간 7:30PM
장소 콘서트홀
관람등급 8세 이상 관람
관람시간 120분
장르 클래식 음악
가격 R석 10만 원 / S석 8만 원 / A석 6만 원 / B석 4만 원
주최 예술의전당, 한겨레신문사
문의 02-580-1300

※ 본 공연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한 좌석 띄어 앉기‘로 객석을 운영하오니, 예매 시 참고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