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ME TALK

세 남자의 미묘한 심리극 〈에르나니〉
빅토르 위고의 희곡 VS 베르디의 오페라

해설이 있는 음악 시리즈 ③
작가 빅토르 위고(왼쪽)와 작곡가 주세페 베르디.

프랑스 예술사에 있어서 1830년은 매우 특별한 해였다. 바로 이해에 프랑스의 위대한 문호 빅토르 위고는 고전주의에 대한 낭만주의의 승리를 이끌어낸 <에르나니>를 세상에 내놓았고, 화가 들라크루아는 특유의 자유분방하고 역동적인 터치로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을 그렸으며, 작곡가 베를리오즈는 사랑의 꿈과 환상을 펼쳐놓은 ‘환상교향곡’이라는 표제 음악을 발표했다. 위고와 들라크루아, 베를리오즈는 문학, 미술, 음악 각 분야의 선봉에 서서 정열적으로 낭만주의적 이상을 펼쳤던 사람들이다. 시인 고티에는 이들을 가리켜 ‘낭만주의 3인방’이라고 불렀는데, 세 사람이 모두 약속이나 한 듯 비슷한 시기에 이른바 ‘큰일’을 저질렀다. 19세기 프랑스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작품과 사건이 모두 1830년 한 해에 일어났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해설이 있는 음악 시리즈 ③

19세기 낭만주의를 꽃피웠던 프랑스.

한 여자를 사랑하는 세 남자

작품의 배경은 16세기 스페인. 주인공 에르나니는 스페인의 귀족 출신이다. 지금은 아버지의 원수인 왕에게 반기를 들고, 산적 두목이 되어 호시탐탐 복수할 기회만 노리고 있다. 그에게는 엘비라라는 애인이 있는데, 엘비라는 삼촌인 실바와 결혼할 처지에 놓여 있다. 이런 엘비라에게 연모의 정을 품고 있는 또 한 사람이 있다. 바로 스페인의 왕 돈 카를로다. 한 여인을 세 남자가 동시에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엘비라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에르나니다.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실바와 결혼을 해야 하는 처지다. 결혼식 준비가 한창 진행되고 있을 때, 순례자로 변장한 에르나니가 실바의 성으로 들어온다. 실바는 그를 순례자로 정중하게 맞아들인다. 에르나니는 신부 예복을 입은 엘비라를 보고 이성을 잃은 나머지 실바에게 자신의 정체를 밝힌다. 그리고 현상금이 붙은 자신의 목을 결혼 선물로 주겠다고 소리친다. 그때 하인이 들어와 왕이 실바의 성에 도착했다는 사실을 알린다. 실바는 에르나니를 비밀 장소에 숨겨준다. 왕은 실바에게 에르나니를 내놓으라고 하지만 실바는 이를 거절한다. 그러자 왕은 인질로 엘비라를 잡아간다.

해설이 있는 음악 시리즈 ③

전 세계 무대에 오르는 명작 빅토르 위고 원작의 <에르나니>.

왕이 엘비라를 데리고 떠난 후 실바는 에르나니로부터 왕이 엘비라를 사랑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몹시 놀란다. 이 자리에서 에르나니는 실바에게 왕에게 복수할 때까지만 자기 목숨을 살려달라고 부탁한다. 실바에게 뿔피리를 주면서 만약 그가 이 피리를 불면 언제 어디서나 그 자리에서 즉시 죽겠다고 맹세한다. 실바는 이런 에르나니의 청을 받아들인다.
그 후 에르나니와 실바는 왕이라는 공동의 적에 맞서 싸우기로 한다. 샤를마뉴 대제의 무덤에서 일당들과 함께 모의하고 있는데, 이때 왕이 등장한다. 곧이어 왕이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되었음을 선포하는 대포 소리가 울린다. 원하는 것을 얻은 왕은 너그러운 마음이 되어 에르나니를 복권시켜주는 것은 물론 그와 엘비라의 결혼도 허락한다. 왕의 선처에 에르나니의 복수심도 봄눈 녹듯이 사라지고 만다. 실바만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처지가 된 것이다.
에르나니와 엘비라는 결혼식을 올린다. 하지만 이들의 행복은 오래가지 못한다. 복수심에 불타는 실바가 두 사람이 행복을 나누고 있는 바로 그 순간에 피리를 불었기 때문이다. 에르나니는 예전에 했던 실바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칼로 자신의 몸을 찌른다. 엘비라는 정신을 잃고 그의 몸 위에 쓰러진다.

해설이 있는 음악 시리즈 ③

베르디는 위고의 작품을 원작으로 오페라 <에르나니>를 선보인다.

베르디의 오페라 <에르나니>

이탈리아의 오페라 대가 베르디는 위고의 원작을 바탕으로 <에르나니>를 작곡했다. 오페라에서는 여주인공 도나 솔의 이름만 엘비라로 바꾸고 나머지 인물의 이름은 모두 그대로 썼다. 1막의 첫 무대는 산적들의 야영지이다. 먼저 적에 대한 복수의 의지와 에르나니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는 힘차고 역동적인 산적들의 합창 ‘건배! 마시자! 마시자!Eviva! Beviam! Beviam!’가 울려 퍼진다. 산적 두목 에르나니는 사랑하는 여인을 실바에게 빼앗기게 생겨 기분이 좋지 않다. 실바와의 결혼을 앞둔 엘비라 역시 괴로움에 빠져 있다. 그녀는 에르나니에 대한 사랑으로 괴로워하며 전막 중에서 가장 유명한 아리아 ‘에르나니, 나를 데리고 도망가주오Ernani! Ernani, involami’를 부른다. 그 후 돈 카를로 왕이 들어와 엘비라에게 애인이 되어달라고 간청하며 ‘그대를 처음 본 날부터Da quel di che t’ho veduta’를 바친다. 하지만 그녀가 단호하게 거절하자 왕은 강제로 엘비라를 데려가려고 한다.
바로 그때 에르나니가 나타난다. 엘비라를 사이에 두고 두 남자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을 때 실바가 들어온다. 그는 두 남자를 ‘나는 불행한 사나이Infelice! E tuo credevi’라고 질책하고, 이어서 ‘명예로운 범죄자들이여!L’offeso onor, signori,’라며 결투를 신청한다. 이때 왕의 시종이 들어와 카를로가 왕이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왕은 자기가 이곳에 온 이유를 다른 말로 둘러대고, 그 말을 믿은 실바는 왕을 오해한 것에 대해 사과한다. 왕은 실바 몰래 에르나니에게 다가가 그를 구해주겠다고 속삭인 후 떠나라고 한다.

해설이 있는 음악 시리즈 ③

한 여자를 둘러싼 세 남자의 갈등을 그린 <에르나니>.

2막의 배경은 실바와 엘비라의 결혼식이 열리는 실바의 성 홀이다. 합창단이 ‘축하합니다. 행복한 날이 되시길Esultiamo! Letizia no inondi!’을 노래한다. 실바가 들어오고, 곧이어 순례자로 변장한 에르나니가 등장한다. 에르나니는 웨딩드레스를 입은 엘비라를 보고 흥분한 나머지 자기 정체를 밝히고 자기 목을 결혼 선물로 바치겠다며 ‘황금만큼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Oro, quant’oro ogni avido’을 부른다.
두 사람만 남게 되었을 때 에르나니는 엘비라를 믿을 수 없는 여자라고 비난한다. 이 말에 엘비라는 단도를 보여주며 결혼식 때 그 칼로 자살할 작정이었다고 한다. 이 말에 마음이 풀린 에르나니는 용서를 빈다. 그리고 엘비라와 함께 서로의 품에서 죽으리라 다짐하는 이중창 ‘아! 내가 만약 지금 죽는다면Ah, morir potessi adesso’을 열창한다.
이 광경을 목격한 실바는 에르나니에게 배은망덕한 자라 비난하며 복수하겠다고 외친다. 그때 시종이 돈 카를로가 성 앞에 도착했음을 알린다. 실바는 무시무시한 목소리로 자기 손으로 직접 복수를 하겠다고 하자 에르나니와 엘비라는 그의 손에 죽게 해달라고 하는 내용의 삼중창이 처절하게 울려 퍼진다. 결국 실바는 에르나니를 숨겨준다.

잠시 뒤 돈 카를로가 들어와 에르나니를 내놓으라고 하지만 실바는 이를 거절한다. 왕은 화를 내며 고문을 해서라도 자백을 받아내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엘비라가 나서 왕에게 제발 자비를 베풀어달라고 청한다. 그 말에 마음이 누그러진 왕은 에르나니 대신 엘비라를 인질로 데려가겠다고 한다. 그리고 엘비라에게 ‘내게로 오라, 장미와 같이Vieni meco, sol di rose’라는 아름다운 아리아를 부른다.
혼자 남은 실바는 몹시 괴로워하며 왕에게 반드시 복수할 것을 다짐한다. 그는 비밀의 방에 있는 에르나니를 꺼내 결투를 신청한다. 그러자 에르나니는 왕에게 복수할 때까지만 참아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자기 뿔피리를 주면서 음산하면서도 결연한 목소리로 “언제 어디서든지 이 뿔피리가 울리면 그 즉시 그 자리에서 죽겠다”고 맹세한다. 실바는 이 맹세가 신의 이름으로 한 맹세임을 확인한다. 복수에 나선 에르나니는 ‘전능하신 신이여, 우리를 도우소서Iddio n’ascolti, e vindice’를 부르고, 마지막으로 실바와 에르나니 일당들이 복수와 승리를 확신하는 합창을 부른다. 금관악기를 동원한 활기차고 에너지가 흘러넘치는 합창이다.

해설이 있는 음악 시리즈 ③

<에르나니>의 아름답고 서정적인 아리아가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죽음을 부르는 피리 소리

3막의 무대는 샤를마뉴 대제 사당 앞의 무덤이다. 왕이 이곳에 반역자들이 모여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말을 듣고 온 것이다. 바로 이 자리에서 카를로는 자신이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에 선출되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 말을 들은 카를로는 부하들에게 반역자들을 체포해 평민은 감옥으로 보내고, 귀족은 참수형에 처하라고 명한다. 그러자 무리 중에서 에르나니가 나와 자기도 참수형에 처해져야 한다고 고한다. 자기는 평민이 아니라 아라곤의 돈 조반니로 세고비아와 카르도나의 공작이라는 것이다.
그때 엘비라가 왕에게 자비를 구한다. 그 말에 마음이 누그러진 왕은 ‘오! 위대한 샤를이시여, 제 마음은O sommo Carlo, più del tuo nome’을 부르면서 미덕을 베풀겠다고 한다. 왕은 모두를 용서하고, 에르나니와 엘비라가 결혼하도록 한다. 이렇게 모두 왕의 관용을 찬양하는 노래를 하고 있을 때, 실바만 혼자서 손상된 명예를 되찾겠다고 다짐한다.

해설이 있는 음악 시리즈 ③
해설이 있는 음악 시리즈 ③

예술의전당에서 곧 막을 올릴 오페라 <에르나니>의 연습 장면. ©(사)라벨라오페라단

4막의 배경은 아라곤에 있는 에르나니의 성이다. 관대한 왕 덕분에 신분을 되찾고, 재산까지 돌려받은 에르나니는 엘비라와 결혼식을 올린다. 사람들이 두 사람의 결혼을 축하하는 ‘오! 얼마나 행복한 한 쌍인가Oh, come felici gioiscon gli sposi!’를 들려준다. 검은 망토를 쓴 사람이 나타나자, 사람들의 합창은 작은 소리로 속삭이듯 저 수상한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해하는 내용으로 바뀐다. 노래가 잠시 침울해지지만, 그가 퇴장하고 나서 다시 직전의 명랑함으로 돌아온다.
에르나니와 엘비라는 ‘보라. 나의 엘비라여. 별마저도 미소짓는구려Ve’ come gli astri stessi, Elvira mia’를 부르며 영원한 사랑을 약속한다. 바로 그때 어디선가 피리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를 들은 에르나니의 얼굴이 창백해진다. 에르나니가 약을 가지고 오라고 엘비라를 내보낸 뒤 어둠 속에서 실바가 모습을 나타낸다. 그는 오케스트라의 음산한 화음에 맞추어 에르나니가 했던 약속을 그대로 읊고는 에르나니에게 칼과 독약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 이 광경을 본 엘비라는 실바에게 애원하지만 실바는 요지부동이다. 결국 에르나니는 과거의 맹세와 명예를 지키기 위해 칼로 가슴을 찔러 스스로 목숨을 끊고, 이를 본 엘비라는 실신한다. 실바는 복수의 신에게 축하를 보낸다.

이미지 (사)라벨라오페라단

글 진회숙 음악 평론가/ 음악 칼럼니스트
이화여자대학교 음악대학과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KBS, MBC를 비롯한 여러 방송국의 클래식 음악 프로그램 구성작가 및 진행자로 활동했다. 현재 클래식 관련 책을 집필하면서 대중을 대상으로 클래식 음악 강좌를 하고 있다. 저서로는 『클래식 오디세이』, 『영화와 클래식』, 『오페라』 등 다수가 있다.

베르디 오페라 <에르나니>

기간 2020.11.28(토)~2020.11.29(일)
시간 토, 일 5PM
장소 오페라극장
관람등급 8세 이상 관람
관람시간 150분
장르 오페라
가격 R석 18만 원/ S석 15만 원/ A석 10만 원/ B석 7만 원/ C석 5만 원/ D석 3만 원
주최 (사)라벨라오페라단
주관 (사)라벨라오페라단
문의 02-572-67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