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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도하가’부터 ‘방탄소년단’까지
한글, 예술이 되다

한글특별전 〈ㄱ의 순간〉
2020.11.12.(목)~2021.2.28(일) | 서울서예박물관 전관·한가람미술관 제7전시실

“김환기·박수근·백남준이 한글 관련 미술품을 남겼다고?”
“‘방탄소년단’과 그들의 팬클럽 ‘아미’가 한글 작품이 됐다고?”

지금껏 없던 한글 전시가 온다. 역대 최대 규모 한글특별전 <ㄱ의 순간>이 11월 12일 막을 올린다. 한국 현대미술계를 대표하는 작가들이 한글을 미술로 재해석한 전시로, 회화·설치·서예 등 전 분야를 망라한 47인의 작품 150여 점을 선보인다. 김환기·박수근·백남준 등 작고 거장부터, 강익중·서도호·이건용·이우환·최정화 등 쟁쟁한 작가들을 통해 한글의 잉태와 탄생, 현재와 미래를 조형 언어로 제시한다. 전시는 예술의전당 서울서예박물관 전관·한가람미술관 제7전시실에서 열린다.

조선일보 창간 100주년 기념 한글특별전
조선일보 창간 100주년 기념 한글특별전

오수환, <대화–한글>, 캔버스에 유화, 각 194×130cm, 2019.

그간 이런저런 한글 전시는 많았다. 한글의 위대함을 찬미하거나 글꼴에만 골몰한 디자인 전시가 태반이었다. 이번 전시 <ㄱ의 순간>은 걸작 속에 숨어 있는 한글의 조형 원리, 소리 언어가 형태를 얻어 문자가 되는 과정의 이해를 돕는 새 관점을 제시한다. 예를 들어, TV 64대로 구성된 백남준의 대형 설치작 <W3>를 주역(周易)의 64괘로 해석해 훈민정음 창제 원리로 연결 짓는 시도는 여태껏 없었기 때문이다. 한글의 탄생 이전부터 일상과 미래, 기존 미술 장르뿐 아니라 가무와 향(香)까지 넘나드는 오감 충족의 미적 향연. 베네치아비엔날레심사위원을 지낸 이용우 중국 상하이대 석좌교수와 김선정 광주비엔날레 대표가 자문위원, 베네치아비엔날레 한국관 감독을 맡았던 이대형 큐레이터가 기획위원으로 합류했다. 대부분의 현역 작가가 이번 한글특별전을 위한 신작을 제작했다.

국내 최정상급 작가가 해석한 한글

참여 작가의 면면은 가히 국가대표급이다. 대한민국 미술품 최고 경매가를 기록 중인 화가 김환기가 미국 활동 시절 「뉴욕타임스」 위에 그린 훈민정음 자모(字母) 문양의 유화 <무제>는 거장의 문자 실험을 확인할 수 있는 귀한 기회다. 가장 한국적인 화가로 불리는 박수근의 1950년대 회화 <ㄱㄴㄷㄹ>은 특유의 두꺼운 흙빛 배경에 물감으로 훈민정음 자모를 쓴 희귀작이다.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 문자와 서예를 추상화로 발전시킨 화가 남관·이응노, 한국화 테러리스트 황창배, 한국 개념미술의 새 장을 열어젖힌 박이소 등 작고 거장의 대표작에서 살아 숨 쉬는 한글을 발견할 수 있다.

조선일보 창간 100주년 기념 한글특별전

박이소, <인간적/비인간적>, 캔버스에 아크릴, 185×188.7cm, 1987,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조선일보 창간 100주년 기념 한글특별전

전광영, <100년의 증언–집합20-MA015>, 혼합 재료, 205×325cm, 2020.

유명 작가의 기존 작품과 전혀 다른 면모도 관전 요소다. 세계적 설치미술가 서도호의 신작 <신묘장구대다라니>는 그 대표적인 사례다. 평소 불경을 외는 아빠를 따라 하며 작가의 실제 어린 딸이 촬영한 ‘셀피’ 영상에 기반했다는 점에서도 독특하다. 뜻 모를 산스크리트어를 소리 나는 대로 외는 ‘신묘장구대다라니’의 암송 과정이 곧 어린아이가 언어를 배우는 학습의 과정과 다르지 않다는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동시에 해당 소리가 한글 자막으로 이동하면서 표음문자로서의 한글과 글꼴의 미적 영역까지 건드린다.

조선일보 창간 100주년 기념 한글특별전

서도호, <신묘장구대다라니>, 4K 영상, 3840×2160(pixels), 2020. ©서도호스튜디오

글씨디자이너 안상수의 <님아 그 물 건너지 마오>는 글자이자 그림이다. 우리나라의 가장 오래된 고대가요 ‘공무도하가’를 한글로 풀어 쓴 것으로, 그저 자·모음의 반복과 겹침만으로도 감정의 표현이 가능함을 웅변한다. 일상의 잡화를 이어 붙여 거대 조각으로 제작해온 설치미술가 최정화는 석기시대 아프리카 쟁기에 네온사인 한글을 붙인 <ㄱ의 순간> 연작을 선보인다. “네온사인은 현대판 서예”라는 작가의 설명처럼, 공간을 장악하는 불빛이 태초의 획처럼 느껴진다.

미디어 작가 강이연은 방탄소년단의 초국가적 문화 공동체 ‘아미’를 작품 요소로 차용해 전 세계로 뻗어 나가는 한글을 시각화한 신작 <문(Gates)>을 선보인다. 오방색 대형 한글 조각으로 유명한 설치미술가 강익중의 신작 <트롯 아리랑>은 트로트 가수 임영웅 등이 부른 노랫말과 실제 노래를 작품을 통해 즐기며 한글의 범용성을 누릴 수 있도록 특수 설계됐다. ‘눈으로 보는 소리’를 구현하는 태싯그룹, 가장 현재적인 이름ㅡ서울에 있는 게이바 이름ㅡ을 향으로 제작해 태우는 오인환 역시 평소 접하기 힘든 볼거리를 선사한다.

조선일보 창간 100주년 기념 한글특별전

강이연, <문(Gates)>, 프로젝션 맵핑, 영상, 사운드, Dual-screen, 2020.

신채호 詩 한글 육필 등 희귀 유물 최초 소개

대규모 한글 전시를 위해 미공개 사료가 국내·외에서 속속 모여들었다. 이번 전시에서 최초로 공개되는 <조선표류인서화>는 1819년 항해 도중 일본에 표류한 안의기 선장 등 조선인 선원 12명의 초상을 일본인 화가가 그리고, 그 위에 안의기 선장이 한글로 고향의 그리움을 옮긴 한·일 합작품이다. 조선시대 수양대군이 석가모니 일대기를 한글로 옮겨 편찬한 『석보상절 3권』 등도 처음 전시된다.

일제강점기, 나라 잃은 슬픔과 타자의 억압 속에서도 한글이 생생히 살아 있었음을 증빙하는 유물도 다채롭다. 독립운동가 신채호의 시 <새벽의 별> 육필 초고가 수록된 『단재유고』가 이번 전시에서 처음 공개되는데, 퇴고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나 당대의 고뇌를 짐작하게 하는 희귀 사료다. 저항시인 이육사가 남긴 시 <편복>의 친필 원고도 선보인다. 국어학자 주시경이 주축이 돼 만든 ‘말모이 원고’와 조선어학회 『조선말 큰사전』 원고도 전시장을 빛낸다. 최근 보물로 지정 예고된 말모이 원고’ 원본은 개막 후 11월 22일까지, 『조선말 큰사전』 원고는 18일까지 전시장에서 관람할 수 있다. 이후 복제본으로 교체될 예정이다.

조선일보 창간 100주년 기념 한글특별전

김혜련, <예술과 암호–고조선>, 종이에 먹, 각, 153×110×3cm, 2019-2020.

현대미술과 유물이 각기 존재하는 대신, 한 공간에서 어울리며 일종의 ‘대화’를 시도한다. 한국 고대 기하문의 보고 천전리 암각화 탁본과 청동기시대 청동거울 등이 고대 유물에서 한글 조형의 미감(美感)을 추적하는 화가 김혜련의 대형 회화 <예술과 암호–고조선>과 함께 공명하고, 태초를 상징하는 둥근 바위와 ‘ㄱ’ 자 모양의 인공 철판을 병치해 자연성과 문명의 어울림을 드러낸 이우환의 <관계항>이 원시성을 고조하는 식이다. 한글은 천·지·인의 공존이기 때문이다.

이미지 정상혁, 예술의전당

글 정상혁 「조선일보」 미술 담당 기자

<ㄱ의 순간>

기간 2020.11.12(목)~2021.02.28(일)
시간 10AM~7PM
※ 매주 월요일 휴관
장소 서울서예박물관 전관·한가람미술관 제7전시실
관람등급 전체관람
장르 전시
가격 일반(만19세 이상) 12,000원/ 청소년(만6세~18세) 8,000원/ 유아(36개월 이상~만5세) 5,000원
주최 예술의전당, 조선일보
주관 예술의전당, 조선일보
문의 02-580-16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