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POINT

영화음악 주인공을 꿈꾸다
〈2020 대한민국영화음악페스티벌〉 플레이리스트

영화음악은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는 순간까지 작품을 지킨다. 조명이 꺼지고 카메라가 퇴장해도, 많은 경우 음악만큼은 한 편의 영화를 낳은 무수한 이름들을 껴안은 채 스크린에 남는다. 2020년 제2회 <대한민국영화음악페스티벌>의 캐치프레이즈인 ‘영화음악 주인공을 꿈꾸다’라는 문구가 와닿은 이유 또한 보이지 않는 음악이 보이는 요소로 가득 찬 프레임에서 한발 물러선 듯 쉽게 잊히지 않는, 명품 조연을 자처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해에 이어 기획된 제2회 <대한민국영화음악페스티벌>은 당초 12월 4일과 9일 두 차례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릴 계획이었으나 코로나19 여파로 개최가 잠정 무산됐다. 영화음악을 화면 밖에서,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만날 기회는 다음으로 미뤄졌지만, 각자가 손에 쥔 적당한 기기와 함께라면 언제든 영화음악을 들을 수 있다. 여기, 아쉬움을 달래줄 플레이리스트를 준비했다. 엔니오 모리꼬네 만큼이나 우리 뇌리에 인상을 남겼던 우리 영화음악 감독들 이병우, 이동준, 이지수, 김태성 감독의 영화 작업 여정과 대표작을 소개한다. 검색창을 띄우고, 볼륨을 높인 채 읽어주시길.

2019년에 열린 제1회 <대한민국영화음악페스티벌> 공연 모습. ©서울그랜드필하모닉오케스트라

이병우의 <괴물>

영화음악 사상 가장 아이코닉한 테마로 존 윌리엄스가 작곡한 <죠스>의 메인 타이틀을 꼽을 이가 적지 않을 테다. 단 두 개의 음을 일정한 간격으로 반복하는 짤막한 오프닝은 긴장을 자아내는 동시에 낯선 적의 이빨을 예감하게 한다. 기타리스트로, 그리고 <장화, 홍련>, <왕의 남자>, <마더> 등의 작품으로 잘 알려진 이병우 음악감독은 인간을 위협하는 크리처를 내세운 수작이라는 점에서 <죠스>와 같이 거론될 수 있을 봉준호 감독의 <괴물>에서 또 하나의 강렬한 스코어를 탄생시켰다. 트럼펫 버전과 보컬 버전도 있는 ‘한강찬가’가 그 주인공이다.

한강에 나타난 괴물과 한 가족의 사투를 그린 영화 <괴물>. ©다음 영화

<죠스>가 ‘쫓기는 듯한’ 음악으로 긴장감을 극대화한다면 <괴물>은 ‘쫓아가는’ 음악으로 괴물을 찾아야만 하는 가족의 애끓는 심정을 역설한다. 이병우 음악감독은 2006년 「씨네21」과의 대화에서 이 영화를 “조금 모자라는 사람들이 어떻게 해보려고 하는 내용”이라 요약했는데, 그 때문에 서민적인 트로트 가락을 살려보고 싶었다고 전했다. 트로트가 팔도를 점령한 2020년에 들어도 그 질곡과 비탄이 못지않게 구성진 ‘한강찬가’와 더불어 이를 더욱 느린 템포로 연주해 황망함을 더한 ‘버려진 노래’, 기타 사운드가 뭉근히 감싸는 ‘눈오는 매점’도 권한다.

이동준의 <태극기 휘날리며>와 <아이 캔 스피크>

<유령>, <쉬리>, <2009 로스트 메모리즈>, <태극기 휘날리며>, <포화 속으로>, <인천상륙작전>…… 이동준 음악감독의 필모그래피를 훑다 보면 검댕과 핏물이 자욱한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변천이 파악되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로망스>, <각설탕>, <아이 캔 스피크>처럼 미소와 눈물이 번지는 작품에서도 제 몫을 다한 그이지만, 묵직한 전장의 음악이 그를 수식하게 된 데에는 한국영화 역대 두 번째 천만 관객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공이 클 것이다. 세대를 뛰어넘는 울림을 주는 인물에 대한 스토리텔링에 임할 때, 지금도 여러 방송국에서 <태극기 휘날리며> 사운드트랙 중 ‘에필로그’를 40초부터 틀곤 한다. 누구나 ‘아, 이 곡이구나’ 되뇔, 현악기와 코러스가 어우러지는 장중한 멜로디는 그 자체로 영화가 표상하는 메시지를 닮아 있다.

여기, 아쉬움을 달래줄 플레이리스트를 준비했다. 이번 무대에 오를 예정이었던 이병우, 이동준, 이지수, 김태성 음악감독의 영화 작업 여정과 대표작을 소개한다. 검색창을 띄우고, 볼륨을 높인 채 읽어주시길.
여기, 아쉬움을 달래줄 플레이리스트를 준비했다. 이번 무대에 오를 예정이었던 이병우, 이동준, 이지수, 김태성 음악감독의 영화 작업 여정과 대표작을 소개한다. 검색창을 띄우고, 볼륨을 높인 채 읽어주시길.

1950년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형제 이야기 <태극기 휘날리며>. ©다음 영화

그동안 극영화로써 쉬이 다루지 않았던, 전쟁터와 식민지 속 여성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영화 <아이 캔 스피크>의 음악 또한 이동준 음악감독의 작품이라는 점도 공연히 의미심장하다. 코미디라는 장르적 틀 안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여성의 증언을 소상히 녹여낸 <아이 캔 스피크>에 흐르는 곡인 ‘약속’, ‘아이 앰 쏘리’의 피아노는 해야 할 말을 해내기 위해 요구되는 적당한 무게감을 조심스럽게 더하며 영화의 어깨를 토닥인다.

주인공 옥분을 통해 일본군 위안부 이야기를 조명한 <아이 캔 스피크>. ©다음 영화

이지수의 <마당을 나온 암탉>

일찍이 <겨울연가>, <여름향기>, <봄의 왈츠> 등 TV 시리즈 주제곡을 작업하며 멜로의 사계를 통과한 덕일까. 이지수 음악감독의 선율은 유독 사랑의 심상을 소중히 대하는 작품 안에서 빛났다. <건축학개론>, <이별계약>, <순정> 같이 연애 감정을 기반으로 한 영화뿐 아니라 <마당을 나온 암탉>, <카트>, <나의 특별한 형제> 같이 가족과 사회, 나아가 생명 그 자체를 향한 애틋함이 묻어나는 영화들에서 그의 음악은 간지럽지 않게 진지하고, 날카롭지 않게 예민하다.

여기, 아쉬움을 달래줄 플레이리스트를 준비했다. 이번 무대에 오를 예정이었던 이병우, 이동준, 이지수, 김태성 음악감독의 영화 작업 여정과 대표작을 소개한다. 검색창을 띄우고, 볼륨을 높인 채 읽어주시길.
여기, 아쉬움을 달래줄 플레이리스트를 준비했다. 이번 무대에 오를 예정이었던 이병우, 이동준, 이지수, 김태성 음악감독의 영화 작업 여정과 대표작을 소개한다. 검색창을 띄우고, 볼륨을 높인 채 읽어주시길.

이지수 감독이 작업한 영화 <건축학개론>, <이별계약>(왼쪽부터). ©다음 영화

그중에서도 한국 애니메이션 역사에 유의미한 족적을 남긴 <마당을 나온 암탉>을 채운 음악에 대해 더 이야기하고 싶다. “음색에 대한 선입견을 활용하는 점은 디즈니와 닮았지만, 주요 테마의 반복으로 감상적인 효과를 노리는 점은 지브리와 닮았다”(차우진 음악 평론가)는 평가는 과장이 아니다. 리코더를 필두로 한 관악기가 깃털이 휘날리는 찰나를 상상케 한다. 현의 소리는 그 장면을 가능케 하는 바람과 같이 움직인다. ‘잎싹, 마당을 나오다’로부터 새로운 땅에 발 디딘 새의 경계심과 벅참을, ‘숲을 지나’로부터 모험을 시작하는 설렘을, ‘비행대회’ Part 1, 2로부터 도전을 받아들이는 작디작은 생명체의 씩씩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자유를 위해 도전하는 암탉 ‘잎싹’의 모험기 <마당을 나온 암탉>. ©다음 영화

김태성의 <가루지기>

김태성은 현재 한국 영화음악인 가운데 가장 선명히 들리는 이름 중 하나다. 팬데믹으로 잠든 극장가를 얼마간 흔들어 깨운 <#살아있다>, <강철비2: 정상회담>을 포함해 <82년생 김지영>, <극한직업>, <1987>까지. 최근 3년간 그가 음악감독으로서 쌓은 필모그래피에서는 의미와 재미 모두 살뜰히 거두길 꿈꾼 대중영화들의 생명력이 전해진다. 넷플릭스행 확정으로 화제를 모은 대작 <승리호> 또한 그의 스코어를 엔진 삼아 출정을 기다리는 중이다.

오케스트라와 작업한 OST를 선보였던 <가루지기>. ©다음 영화

장르와 콘셉트를 불문하고 콘텐츠를 뒷받침하는 최적의 사운드를 뽑아내는 작곡가로 신뢰받는 그에게도 아픈 손가락이 있다. 2008년 개봉한 <가루지기>가 그러하다. 2012년 「씨네21」과 나눈 대화에 따르면 “섹시 코미디는 족보가 있는 장르니 이런 영화를 무시하는 풍토를 없애보자”는 결기로 욕심을 내본 게 단초였다. 부족한 시간을 쪼개 불가리아로 날아가 엔니오 모리코네의 스태프들, 120인조 오케스트라와 작업했다. 마감에 쫓겨 최종 점검도 제대로 못 하고 개봉을 맞았다는 김 감독은 이 경험을 통해 음악적 욕심보다 작품과 장르 표현에 더 충실해지자는 다짐을 했다고 한다. 물론 <가루지기>가 반성 어린 깨달음만을 남긴 것은 결코 아니다. 7번까지 마련된 러브 테마는 차분한 메인 멜로디를 변주해 담백함과 애절함을 오가는 매력을 뿜는다. ‘트로피칼 칵테일 풍의 옹헤야’, ‘다듬이와 절구방아’의 위트도 기억하고 싶다.

이미지 서울그랜드필하모닉오케스트라, 다음 영화

글 남선우 「씨네21」 기자
매주 영화를 보고 영화인을 만난다. 작품과 나눈 첫 대화를 전한다는 마음으로 기사를 쓴다. 글을 읽은 이들이 다음 대화를 이어가길 바란다.

<ㄱ의 순간>

기간 2020.11.12(목)~2021.02.28(일)
시간 10AM~7PM
※ 매주 월요일 휴관
장소 서울서예박물관 전관·한가람미술관 제7전시실
관람등급 전체관람
장르 전시
가격 일반(만19세 이상) 12,000원/ 청소년(만6세~18세) 8,000원/ 유아(36개월 이상~만5세) 5,000원
주최 예술의전당, 조선일보
주관 예술의전당, 조선일보
문의 02-580-16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