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20년 지기가 마련한 ‘크리스마스 축제’

예술의전당 스페셜데이콘서트 〈화이트 크리스마스〉
12.23(수) | 콘서트홀
〈화이트 크리스마스〉 공연을 앞둔 하림(왼쪽)과 김정원. ©이보영

올해는 음악가에게 유달리 혹독했다. 코로나19에 공연이 줄줄이 취소됐다. 온라인 공연을 열어도 텅 빈 객석이 주는 싸늘함에 연주자들은 당황했다. 박수 없이 흐르는 적막. 베테랑 피아니스트 김정원에게도 무관중 공연은 고역이었다. 무대보다 필요한 건 관객과의 호흡이라 판단한 그는 친구들을 모았다.

피아니스트 김정원은 오는 23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화이트 크리스마스> 공연의 음악감독을 맡았다. 무대 위에서 선보인 유려한 타건처럼 발도 넓었다. 클래식 음악 연주자를 비롯해 가수들을 섭외한 것이다. 김정원과 함께 가수 하림, 존박, 선우정아가 공연에 나선다. 지휘자 김성진이 실내악단 조이 오브 스트링스를 이끌고 오케스트라 선율로 무대를 채운다.

피아니스트 김정원은 오는 23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공연의 음악감독을 맡았다.

공연의 음악감독을 맡은 피아니스트 김정원. ©이보영

공연 프로그램은 김정원이 출연진과 머리를 맞대고 구성했다. 1부에선 표트르 차이콥스키의 ‘현을 위한 세레나데 C장조’ 중 1악장을 시작으로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5번 E플랫장조(황제)‘,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1번 E단조’를 들려준다.

클래식 음악 선율만 무대 위에 흐르지 않는다. 이어지는 2부에선 오케스트라 반주에 맞춰 존박이 ‘그 노래’와 ‘Have Yourself a Merry Little Christmas’를 부르고, 하림은 독일 악기인 ‘드렐라이어’를 들고 무대에 나선다. 그는 ‘O Tannenbaum’과 ‘난치병’을 들려준다. 선우정아도 본인의 대표곡 ‘도망가자’와 ‘그러려니’를 준비했다. 피날레에선 모두 무대에 올라 ‘When I Fall in Love’를 합창할 예정이다.

피아니스트 김정원은 오는 23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공연의 음악감독을 맡았다.

음악여행자라는 별칭으로 사랑받는 작곡가 겸 가수 하림. ©이보영

연주자 관객 모두에게 위로가 되는 무대

공연 구성만 보면 웬만한 음악축제에 빗댈 규모다. 공연 성수기인 연말에 대규모 공연을 꾸린 이유는 뭐였을까. 평소라면 각자 콘서트나 독주회 준비로 바쁠 시기에 말이다. 지난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20년 넘게 우정을 쌓아온 김정원과 하림을 만나 물었다.

김정원(이하 정원) 찰나에 지나가지만, 공연이 주는 벅찬 감정을 관객에게 전하고 싶었어요. 사실 올해 외줄 타기를 하는 기분이 들었어요. 연습을 힘껏 해도 공연이 취소된 적이 많았으니까요. 망연자실하고 무서웠죠. ‘연주를 이어갈 수 있을까’라는 고민도 들었고요. 하지만 지난달 공연을 했을 때 느꼈어요. 관객과 공감할 때 힘이 나요. 마취된 듯 모든 두려움이 없어졌어요.

하림 올해 실내 공연이 취소되자 길거리로 나갔어요. JTBC 프로그램인 ‘비긴어게인 코리아’에 출연해 여러 장소에서 연주했는데, 독특했던 건 촬영 현장에 온 관객들이 많이들 울었어요. 음악이 사람들의 삶에 깊숙이 자리 잡은 거라 생각했죠. 음악이 주는 힘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피아니스트 김정원은 오는 23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공연의 음악감독을 맡았다.

팬데믹 시대, 음악의 힘을 전하고픈 하림과 김정원. ©이보영

이번 공연 콘셉트는 ‘위로’다. 코로나19가 퍼진 후 너나없이 음악가는 관객에게 전하려 했다. 누구나 마음이 무너지기 쉬운 환경이 찾아와서다. 가까운 지인은 물론 친구나 가족도 멀리해야 했다. 음악인도 마찬가지였다. 김정원도 기댈 곳이 필요했었다.

정원 제가 정신력이 강한 성격은 아닙니다. 주변에선 ‘외유내강’이라 말하지만 정반대예요. 올해 코로나19에 지칠 때 마음 터놓고 대화할 상대가 필요했어요. 그때 하림에게 푸념 섞인 말을 했죠. 다 받아줬어요. 큰 위로가 됐습니다.

하림은 어땠을까. 그 역시 힘든 시기를 보냈다. 가수로서 존재 가치를 증명할 공연장이 문을 닫았다.

하림 형을 위로해주면서 저 역시 무의식적으로 지쳐 있었다는 걸 깨달았던 것 같아요. 올해는 음악인에게 고달픈 한 해였어요. 존재 가치를 증명할 무대가 사라졌죠. 다들 자존감이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본능은 남아 있어요. 누군가 곁에서 힘들면 음악을 들려주려는 겁니다. 사실 연주할 때 청자랑 소통하며 힘을 얻기도 하죠.

피아니스트 김정원은 오는 23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공연의 음악감독을 맡았다.
피아니스트 김정원은 오는 23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공연의 음악감독을 맡았다.

20년 지기 친구이자 음악으로 소통하는 <화이트 크리스마스>의 주인공들. ©이보영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는 ‘지음’

거문고 소리만 들어도 친구를 알아본다는 고사성어처럼 둘의 관계는 ‘지음(知音)‘이다. 백아와 종자기 같이 각자의 소리를 알아주는 사이인 것이다. 처음 인연을 맺은 건 가수 김동률이 김정원과 함께 펼친 콘서트에서 합주를 하면서다. 둘이 다시 만난 곳은 오스트리아. 2005년께 하림이 유럽 전역을 떠돌며 음악 내공을 쌓던 시기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유학 생활을 하던 김정원 집에 머물렀다.

하림 당시 둘 다 서른 줄에 가까운 나이였어요. 예민했던 시기를 유럽에서 함께 보냈죠. 친구들 초대해 소박한 음악회도 열고, 공연도 따라갔어요. 형이 체코 카를로비바리에서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와 협연한 공연이었는데 명연이었습니다. 그때 피아노 치던 장면을 그림으로도 그렸어요.

피아니스트 김정원은 오는 23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공연의 음악감독을 맡았다.

2005년 김정원이 체코 카를로비바리에서 미샤 마이스키와 펼쳤던 공연 리허설 한 장면. 하림이 직접 그려 김정원에게 선물했다. ©이보영

한국에 돌아와서도 인연은 이어진다. 김정원이 꾸린 공연 <김정원과 친구들>을 통해서다. 2006년 첫 회를 시작으로 매년 한 번씩 클래식 음악과 대중음악을 엮어 관객에게 선보였다. 가수 김동률을 비롯해 지금은 음악감독으로 자리 잡은 정재일, 가수 양파 등이 함께했다.

정원 2006년부터 약 7년 동안 다양한 음악인과 함께 공연을 마련했어요. 장르 가리지 않고 한데 모여 ‘놀이’처럼 공연에 나섰죠. 그러다 각자 갈 길을 걷다 보니 공연 여는 게 뜸해졌어요.

길은 다르지만 같은 곳을 바라보는 둘

세월이 훌쩍 흘렀다. 30대에서 40대로 접어든 둘. 음악을 풀어내는 방향은 서로 달랐다. 하림은 ‘길거리’에 이정표를 세웠다. 김정원은 ‘음반’에 초점을 맞췄다. 하림은 정규음반 2집을 낸 후 올해까지 16년째 음반을 내지 않았다. 김정원은 지난달 베이스 연광철과 함께 독일 예술가곡을 묶은 음반을 선보였다.

하림 대중과 만나는 가장 쉬운 길이 ‘공연’입니다. 히트곡이나 팬덤에 의존하지 않고 청중과 소통하고 싶었어요. 음반에 쏟는 힘을 빼니 장르를 넘나들며 화합할 수 있었죠.

정원 가치관의 차이죠. 공연과 음반이 주는 매력이 각기 다릅니다. 저는 음반이 ‘사진’이라고 생각해요. 어릴 때 찍은 사진을 보며 과거를 되돌아보듯 제가 남긴 음반으로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는 거죠. 자기만족을 위한 작업이기도 합니다.

공연 홍보차 유튜브 촬영에 열중하는 하림과 김정원. ©이보영

음악을 바라보는 관점은 일치했다. 시간이 지나 자연스러워졌다고 둘은 입을 모았다. 치기 어렸던 시절보다 한결 차분해졌다는 설명이다.

하림 젊을 땐 음악이 ‘내 것’이라 생각해서 조바심이 났어요. ‘뭔가 보여줘야 해’라는 생각이었죠. 요즘은 그런 조바심이 줄었어요. 음악이 나에게 왔다가 순간 사라질 수도 있다는 상상을 해요. 이걸 받아들이니 연주할 때 한결 자연스러워지더라고요.

정원 어릴 땐 인생에서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을 과대평가했어요. 다른 걸 제쳐두고 1순위였죠. 나이를 먹으니 강박감이 사라졌어요. 화려한 기교로 나를 뽐내지 않아요. 이제는 누구든 편안하게 들을 수 있게 건반을 누르려 합니다.

피아니스트 김정원은 오는 23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공연의 음악감독을 맡았다.

탄탄한 연주 실력으로 관객에게 위로를 전할 두 사람. ©이보영

욕심을 버리니 마음이 열렸다. 오랜 세월만큼 내공도 깊게 쌓였다. 코로나19 탓에 함께 연습한 횟수는 적지만 서로를 신뢰했다. 실력이 출중해서다. 장르 구분은 신뢰 앞에서 무의미했다.

하림 코로나19 탓에 모이기 힘들었지만, 워낙 연주 실력이 뛰어나 걱정은 없었습니다. 서로 걸어온 길이 다르니 오히려 자유롭게 연주할 수 있었죠. 경계를 허물면 시야가 넓어집니다.

사진 이보영(스튜디오 록)
장소 협찬 프라그랑스 예술의전당점

오현우 한국경제신문 기자
한국경제신문 문화부에서 공연예술 기사를 쓰고 있다. 주로 클래식 음악과 전통예술, 발레 등 순수예술 분야를 다룬다.

<화이트 크리스마스>

기간 2020.12.23(수)
시간 7:30PM
장소 콘서트홀
관람등급 8세 이상 관람
관람시간 120분
장르 복합 장르
가격 R석 10만 원/ S석 8만 원/ A석 6만 원/ B석 4만 원
주최 예술의전당
문의 02-580-1300

최근 코로나19 확진자의 급속한 증가세가 지속됨에 따라 12.23(수)에 예정되었던 <화이트 크리스마스> 공연이 취소되었음을 안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