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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영화 황제’로 평가받은
한국인 배우, 김염

창작뮤지컬 〈올 댓 상하이〉
2020.12.30(수)~2021.2.14(일) | 자유소극장
〈올 댓 상하이〉의 주역 배우들. ©김솔

1927년 동양의 파리라고 불리던 격동의 도시, 올드 상하이. 몰래 집을 나와 뱃삯 7원을 들고 상하이에 도착한 18세 앳된 소년 김염이 어딘가를 응시한다. 큰 키에 이글거리는 눈동자를 가진 소년은 무작정 상하이 번화가 화이하이거리의 궈타이극장으로 향한다. 올드 상하이는 이미 20여 개의 영화관이 성업 중이고, 유럽 및 미국의 대형 영화사 에이전트와 배급사를 갖고 있을 정도의 최고의 영화 도시였다. 소년은 극장 청소, 검표원 등 허드렛일을 하며 2년간 고작 세 번 엑스트라로 연극무대에 출연한다. 한 번 출연료는 1원, 방세는 2원이었다고 한다. 소년은 추위와 배고픔을 견디며 연기를 배웠다. 그러다 미국 컬럼비아대학교에서 영화를 공부하고 온 신인 감독 쑨위의 눈에 들어 첫 주연을 맡은 영화 <야초한화(野草閑花)>로 단번에 스타가 되었다. 그 후 주로 부잣집 도련님, 가난한 광부, 세련된 미술학도, 농민 지도자 역을 맡았다.

몰래 집을 나와 뱃삯 7원을 들고 상하이에 도착한 18세 앳된 소년 김염이 어딘가를 응시한다. 큰 키에 이글거리는 눈동자를 가진 소년은 무작정 상하이 번화가 화이하이거리의 궈타이극장으로 향한다.
몰래 집을 나와 뱃삯 7원을 들고 상하이에 도착한 18세 앳된 소년 김염이 어딘가를 응시한다. 큰 키에 이글거리는 눈동자를 가진 소년은 무작정 상하이 번화가 화이하이거리의 궈타이극장으로 향한다.

독립운동가의 아들이자 중국 최고 배우 김염을 연기할 두 배우. ©김솔

중국 영화 황제의 탄생

1932년 「전성일보」 영화주간이 중국 영화 황제 선출 결과를 발표했다. 압도적 1위로 김염이 선정됐다. 가장 사랑하는 남자배우 1위, 가장 잘생긴 남자배우 1위, 가장 친구가 되고 싶은 남자배우 1위에도 김염의 이름이 올랐다. 어떤 팬들은 폐하라고 부를 정도였다. 중국 젊은이들의 우상이 되었고, 당대 최고의 배우 왕런메이와의 결혼 소식도 톱기사로 실렸다. 탄탄대로를 달리며 중국 영화계를 주름잡던 영화 황제 김염은 지속되는 일본군의 탄압에 회의감을 느끼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김염은 더이상 애정 영화는 찍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그 후 중국 5대 걸작이라고 부르는 항일영화 <대로大路>를 찍는다. 영화는 중국 전역에 개봉돼 일제에 침탈당한 중국 젊은이들의 가슴을 뜨겁게 만들었다. 김염은 번 돈을 갖고 비밀리에 남경으로 간다. 그리고 한국특무대독립군 본부에서 김구를 만나 독립 자금을 전달한다. 중국의 영화 황제 김염은 조선인 김덕린이었다.

몰래 집을 나와 뱃삯 7원을 들고 상하이에 도착한 18세 앳된 소년 김염이 어딘가를 응시한다. 큰 키에 이글거리는 눈동자를 가진 소년은 무작정 상하이 번화가 화이하이거리의 궈타이극장으로 향한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김염, 왕런메이, 니에얼, 티엔한, 쑨위의 실제 모습.

1995년 중국 영화 탄생 90주년 기념으로 국가 차원에서 제작한 세계적인 중화권 배우를 소개하는 『중화영성』이라는 책에서 완령옥, 성룡, 이소룡, 이연걸보다 먼저 첫 페이지에 김염의 사진이 나온다. “중화 최고의 조선인 출신, 서울 출생”이라고 쓰여 있다. 그의 아버지는 김필순, 한국 최초의 서양 면허를 취득한 의사다. 1908년 세브란스 의과대학을 1기로 졸업한 초기 세브란스 의학과의 핵심 인물이다. 김필순은 신민회의 핵심 멤버인 안창호와 의형제를 맺을 정도로 친했고 활동 자금을 제공했다. 1911년 일제는 민족해방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조선총독 암살모의의 누명을 씌워 105인 사건을 만든다. 그 명단에 김필순이 있었다.

몰래 집을 나와 뱃삯 7원을 들고 상하이에 도착한 18세 앳된 소년 김염이 어딘가를 응시한다. 큰 키에 이글거리는 눈동자를 가진 소년은 무작정 상하이 번화가 화이하이거리의 궈타이극장으로 향한다.

동시대의 한국과 중국의 역사와 문화, 교육을 엿볼 수 있는 <올 댓 상하이>. ©김솔

김필순은 모든 것을 버리고 서울을 떠나 중국으로 왔다. 김덕린의 나이 두 살 때였다. 김필순은 중국에서 병원을 개업하고 독립운동을 계속해오던 중 일본인이 건넨 우유를 마시고 독살당한다. 남긴 재산은 거의 없었다. 김덕린의 어머니는 중국인의 빨래를 하면서 생계를 유지했다. 가족은 뿔뿔이 흩어지고 김덕린은 고모의 집에 있게 된다. 김덕린의 고모는 대한애국회를 조직한 김순애이고, 고모부는 1919년 파리강화회의 대한민국임시정부 대표로 참가한 김규식 박사다. 사촌누이는 김마리아 대한애국부인회의 회장이다. 훗날 집안에서 6명이 독립유공자로 추서될 정도로 확고한 독립운동가의 집안이다. 어린 덕린은 이런 환경 속에서도 영화배우의 꿈을 포기할 수 없었다. 당시 루쉰에 빠져 있던 덕린은 자신의 이름을 ‘불꽃 염(焰)’ 자를 써서 김염(진옌)으로 바꾸었다.

김염, 저항과 투쟁의 예술가

당시 상하이는 난징조약에 의해 1845년 11월부터 1943년 8월까지 약 100년간 상하이의 일부 지역이 외국인 통치 특별구였다. 김염이 있던 1920년대에는 ‘공공 조계’와 프랑스의 ‘프랑스 조계’로 재편됐다. 이 구역은 치안은 좋지 않았지만, 사람들의 자유는 보장돼 있었다. 은행, 호텔, 교회, 클럽, 영화관, 식당, 고급 아파트, 백화점, 공원, 경주장 등 동서양의 이질적인 문화가 자연스럽게 섞이고 문화와 돈이 만나는 곳이며 예술가와 식민 지배에 항거하는 여러 세력의 주요 활동 무대이기도 했다. 김염도 올드 상하이에서 인생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친구와 스승을 만난다. 바로 배우 왕런메이와 천재 음악가 니에얼, 영화감독 쑨위, 극작가 티엔한이다. 1931년 일본은 만주를 침략하면서 중국 대륙 침략의 야욕을 드러내었고, 이에 항일감정이 고조되고 있었다. 김염은 쑨위, 니에얼, 티엔한 등과 함께 상하이 영화문화협회를 발족해 집행위원장을 맡았다. ‘영화인은 자본가의 유흥거리를 위해서가 아니고 사회 발전에 기여하고 반제국주의 투쟁에 도움이 되는 식으로 자기 예술을 발휘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훗날 그의 아내가 된 왕런메이는 당시의 그를 열혈남아라고 느꼈다고 한다.

몰래 집을 나와 뱃삯 7원을 들고 상하이에 도착한 18세 앳된 소년 김염이 어딘가를 응시한다. 큰 키에 이글거리는 눈동자를 가진 소년은 무작정 상하이 번화가 화이하이거리의 궈타이극장으로 향한다.
몰래 집을 나와 뱃삯 7원을 들고 상하이에 도착한 18세 앳된 소년 김염이 어딘가를 응시한다. 큰 키에 이글거리는 눈동자를 가진 소년은 무작정 상하이 번화가 화이하이거리의 궈타이극장으로 향한다.

화려한 올드 상하이 시대, 성공한 예술가들의 인생 스토리를 담은 창작뮤지컬. ©김솔

짧지만 뜨거웠던 불멸의 만남

왕런메이와 니에얼, 김염은 무명 시절부터 친구로 지냈다. 1930년대 중국 영화는 등장인물이 노래를 부르는 형태가 유행했으므로 영화음악이 필수였다. 니에얼과 왕런메이, 김염은 같이 노래를 부르며 작품 이야기를 하곤 했다. 니에얼이 영화음악을 작곡하면 티엔한 감독과 김염의 집으로 가서 김염에게 시창해달라고 했다고 한다. 김염이 출연한 영화 <대로大路>에서도 음악을 니에얼이 만들고 김염이 불렀다. 김염은 니에얼이 수배되자 그를 변장시켜서 비밀리에 일본행 배에 태워준다. 니에얼은 일본에 가서 완성한 ‘의용군행진곡’을 우편으로 부쳐 보낸 뒤 바다에서 수영을 하다가 익사했다고 한다. 스물세 살에 요절한 친구의 소식을 전해 들은 김염은 비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가 작곡하고 김염의 스승 티엔한이 작사한 ‘의용군행진곡’이 이후에 중국의 국가로 지정됐다. 이들의 만남은 짧았지만 그의 음악이 중국인들에게 계속 불리니 영원한 만남이라고 하겠다.

몰래 집을 나와 뱃삯 7원을 들고 상하이에 도착한 18세 앳된 소년 김염이 어딘가를 응시한다. 큰 키에 이글거리는 눈동자를 가진 소년은 무작정 상하이 번화가 화이하이거리의 궈타이극장으로 향한다.

실존했던 김염과 왕런메이, 니에얼의 삶을 담은 <올 댓 상하이>. ©김솔

김염과 왕런메이, 니에얼 이들의 불꽃같은 사랑과 우정이 뮤지컬 <올 댓 상하이>에서 펼쳐진다. 올드 상하이를 배경으로 격동의 세월을 살았던 젊은 예술가의 숨결을 기대해본다.
김염을 발탁한 영화감독 쑨위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김염의 연기의 비밀은 그가 조선인으로 갖고 있는 사회에 대한 불안과 불만을 영화에 그대로 투영한 것이다. 조선인으로서의 정체성이 그 뿌리였다.“

이미지 제공 예술의전당, (주)팀플레이예술기획

정리 예술의전당 웹진 편집팀
사진 김경훈, 셔터스톡

* 본 기사는 김경훈 사진기자와의 인터뷰를 토대로 작성되었습니다.

 이미정 극작가
극작과 연기를 전공했다. <벚꽃동산>, <바냐아저씨> 등에서 배우를 하다 200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희곡 부문에 <낙원의 길목에서>로 등단했다.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며 연극, 뮤지컬, 영화 등 다장르에서 글을 쓰고 있다. 스스로를 ‘작가’가 아닌 ‘잡가’라고 소개하는 것을 좋아한다.

<올 댓 상하이>

기간 2020.12.30(수)~2021.2.14(일)
시간 화, 목 7:30PM/ 수, 토 3PM, 7:30PM/ 금, 일 3PM
* 매주 월요일 공연 없음/ 2021.1.1(금) 3PM, 7:30PM 공연 있음.
장소 자유소극장
관람등급 8세 이상 관람
관람시간 100분
장르 뮤지컬
가격 R석 7만 원/ S석 5만 원
주최 예술의전당
주관 예술의전당, 팀플레이예술기획(주)/ 제작투자: (주)이수창업투자
문의 02-580-1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