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ME TALK

어머니, 내 어머니와의 동행
‘여행이 좋다!’

아티스트들의 여행 시리즈 ⑥

세계적인 설치미술가 강익중 작가가 길 위에서 보낸 무수한 여행의 순간들. 그 시간 안에는 어머니가 있다. 광활한 로키산맥, 척박하지만 아름다운 데스밸리를 누비며 그들은 최고의 여행의 동반자가 되었다.

그러니까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기 2년 전 가을이었다. 미국과 캐나다 서부 지역을 위아래로 긋는 로키산맥을 어머니와 함께 다녀오는 일정을 짰다. 일단 뉴욕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비행기로 이동한 다음 일주일 동안 하루 10시간 이상을 자동차로 달리는 강행군이었다. 아들은 운전을 좋아하고 어머니는 차창 밖 풍경을 좋아하니 두 사람의 여행 궁합은 완벽했다.

꽃노을이 사라지고 별이 내릴 때쯤 계곡물 소리가 요란한 산속 아랫마을에 여정을 풀기로 했다. 마을 입구 표지판에 적힌 ‘날아간 새’라는 마을 이름이 어슴푸레 보였다. 당장이라도 어디선가 말을 탄 인디언이 나타날 것 같은 꽤 어둑어둑한 저녁이었다.

“그것참 이름 한번 이상하다. 그렇죠?”
“그러게, 누군가 ‘날아간 새’를 그리워했나 보다.”

미국 여행 중 강익중 작가와 어머니의 단란한 한때. ©강익중

다음 날 아침 어머니는 빨갛고 노란 로키산맥의 단풍에 연거푸 감탄사를 외치셨다. 작은 들꽃 하나에도 감동하는 분인데 적도의 꽃처럼 번진 가을의 물결에 얼마나 놀라셨을까.

“이맘때 우리나라 설악산 단풍도 대단하죠?”
“아마 그럴 거야. 히, 근데 나 설악산 아직 못 가봤어.”

가을빛으로 물들어가는 화려한 로키산맥 풍경.

형편이 어려웠던 우리 식구는 늘 서울의 끄트머리 동네를 옮겨 다니며 살았다. 그렇지만 삶의 목줄이 걸린 서울의 경계 밖으로 나갈 기회는 거의 없었다. 내가 기억하는 단풍은 어릴 적 이태원 언덕배기에서 바라본 남산과 고향 청주의 나지막한 우암산이 전부다.

1984년 1월, 난생처음으로 비행기를 탔다. 뉴욕 브루클린에 있는 프랫인스티튜트에 등록하기 위해 두렵고 설레는 마음으로 꽁꽁 얼어붙은 낯선 도시에 착륙했다. 나의 역마살에 발동이 걸리기 시작한 해다. 3월 중순 짧은 봄방학을 이용해 당시는 친구였던 지금의 아내를 만나러 뉴욕의 반대편 시애틀까지 그레이하운드 버스를 타고 가기로 했다. 서울의 변두리 촌놈이 연달아 바깥 구경을 제대로 하게 된 셈이다. 버스터미널 매표소에서 시애틀로 가는 왕복표 한 장을 주문하니 창구의 직원이 놀란 표정으로 내게 다시 물어본다.

“방금 시애틀 간다고 했어요?”
“네! 시애틀.”
“아, 엄청 힘들 텐데…. 하지만 굿 럭!”

사랑하는 이가 기다리던 도시 시애틀의 야경.

맨해튼 42번가 버스터미널에서 떠난 버스는 목적지 시애틀 다운타운까지 모두 서른다섯 곳의 크고 작은 도시와 마을에 들렀다. 승객이 계속해서 타고 내리고 운전사도 수시로 바뀌었다. 나처럼 무식하게 버스로 미국의 동서를 횡단하는 사람이 또 있을까 생각했었는데, 웬걸 한 사람이 버스에 더 있었다. 뉴욕에서부터 줄곧 맨 앞자리에 앉아 계셨던 미소가 따뜻한 고운 할머니였다. 오랫동안 동네 편물 일감을 받아 일하느라 어깨가 굽으신 서울의 어머니와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멀리 떠나는 아들 몰래 눈물을 훔치셨던 어머니의 옆모습. 뉴욕에서 출발해 이틀째 되던 날 버스가 텅텅 비자, 할머니가 뒷자리에 앉아 있던 내게 앞쪽으로 오라고 손짓을 하셨다.

“어디서 왔어요? 학생인가?”
“네, 한국에서 얼마 전에 왔습니다. 뉴욕에서 미술 공부를 하려고요.”

들고 있던 스케치북을 보여드리니 “원더풀”이라고 거듭 외치셨다.

“할머니는 어디 가세요?”
“캘리포니아에 사는 아들 식구를 보러 가는데 비행기 대신 버스를 타게 됐어.
이제까지 살면서 미국을 제대로 본 적이 없어서.”

“근데 할머니 연세가?”
“올해 구십.”

어머니가 하늘로 가시기 1년 전, 시에라네바다산맥 동쪽에 위치한 죽음의 계곡이라 불리는 데스밸리에 모시고 갔다. 어머니와의 마지막 여행이었다. 한겨울 밤, 데스밸리의 하늘은 쏟아질 듯한 별들로 가득했다. 어머니와 아들이 탄 차는 아무도 없는 길가에 잠시 멈추어 섰다.

데스밸리의 밤하늘을 수놓은 신비로운 별빛.

“와! 저 하얀 게 다 별이에요! 저기 은하수 보여요? 북두칠성도?”

그런데 어째 어머니는 말씀이 없으셨다. 당뇨병으로 앞을 못 보다 먼저 가신 아버지 생각 때문이었다. 하얀 밤하늘 속에서 어머니는 아버지 별을 찾고 계셨고, 철없는 아들은 고개를 젖히고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별똥별만 기다리고 있었다.

“저기, 별똥별 떨어져요!”
“어디?”
“아이고! 지나갔다!”

모래언덕과 사막, 협곡으로 이뤄진 데스밸리.

지금까지 미국을 자동차로 일곱 번 횡단했다. 대부분 작품 전시 때문이었다. 뉴욕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정확히 3천 마일이라는 것을 알았고, 로키산맥을 넘기 전에 연료를 충분히 채워야 하는 것도 알았다. 이상하게도 그 많던 주유소가 산에만 올라가면 아예 없거나 일찍 문을 닫아버린다.

어쩌면 여행은 인생과 같다. 갈 길이 멀수록 더 꼼꼼하게 준비하고 챙겨야 한다. 자동차 앞 유리창 세정액은 충분히 채워져 있는지, 타이어 압력은 괜찮은지… 등등. 사람들은 타고 내리고 우리들의 인연은 이어지고 끊어진다. 그리고 창밖의 풍경과 인생의 여정은 날씨처럼 수시로 바뀐다. 그렇게 사람들이 하나둘 내리다 보면, 어느새 우리는 목적지에 도착한다. 인생의 종점에선 모든 것을 두고 내려야 한다. 아들 손을 놓고 내리셔야 했던 어머니처럼.

1984년 미국 뉴욕 유학 시절의 작가. ©강익중

강익중 작가는 1994년 예술적 멘토인 백남준과 휘트니미술관에서 <멀티플/다이얼로그>전을 열었다. ©강익중

오늘 아침 뉴욕 집 앞마당에 처음 보는 새 한 마리가 날아왔다. 진돗개 두 마리가 재빠르게 따라다녀도 숨바꼭질하듯 숨었다 다시 나타난다.

‘그 날아간 새가 여기까지 날아왔나? 은하수 건너왔나? 혹시 오는 길에 울 어머니 만나봤나?’

난 이유 없이 다니는 여행이 좋다.
난 갈 곳 없이 다니는 여행이 좋다.
난 기웃거리며 다니는 여행이 좋다.
난 숙맥처럼 다니는 여행이 좋다.
난 여행처럼 사는 인생이 좋다.

– 2020년 겨울, 작업 일지 중에서

사진 강익중, 셔터스톡

 강익중 미술가
충청북도 청주에서 출생. 홍익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뉴욕으로 건너가 프랫인스티튜트를 졸업했고, 현재 뉴욕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1994년 휘트니미술관에서 백남준과 〈멀티플/다이얼로그〉전을 열었고, 1997년 베니스비엔날레에 한국대표로 참가하여 특별상을 수상했다. 주요 작품으로는 <달항아리>, <해피월드>, <내가 아는 것> 등이 있다. 

여행의 묘미는 목적지나 계획의 변화가 불러오는 예상치 못한 전개가 주는 즐거움이다. 연출, 배우, 음악감독, 뮤지션 등 다방면으로 활약 중인 만능 소리꾼 이자람에게 스페인 카스텔데펠스가 바로 그런 곳이었다. 아티스트를 무장해제시킨 여행지를 따라가본다.

자유롭게 일상을 즐기는 카스텔데펠스의 사람들. ©mariusz.ks/ 셔터스톡

여행의 묘미는 목적지나 계획의 변화가 불러오는 예상치 못한 전개가 주는 즐거움이다. 연출, 배우, 음악감독, 뮤지션 등 다방면으로 활약 중인 만능 소리꾼 이자람에게 스페인 카스텔데펠스가 바로 그런 곳이었다. 아티스트를 무장해제시킨 여행지를 따라가본다.

청명한 날씨와 정돈된 도시 풍경을 가진 카스텔데펠스. ©V_E/ 셔터스톡

메시의 도시답게 등판에 메시 이름이 새겨진 유니폼을 입은 아이들을 종종 볼 수 있는 그곳은, 놀랍게도 작고 큰 모든 공터마다 자유로이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하루는 공터 한쪽에 앉아 오랜 시간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왜 내가 사는 서울에는 이런 공터가 딱히 떠오르지 않는지, 이렇게 뛰노는 아이들은 다 어디 있으며, 동네 사람들 모두가 바깥에 나와 마주치며 안부를 건네는 이 풍경을 어째서 보기 어려운 것인지 한참 골똘히 생각했다.

정리 예술의전당 웹진 편집팀
사진 김경훈, 셔터스톡

* 본 기사는 김경훈 사진기자와의 인터뷰를 토대로 작성되었습니다.

<10월의 어느 멋진 날>

기간 2020.10.30(금)
시간 7:30PM
장소 콘서트홀
관람등급 8세 이상 관람
관람시간 120분
장르 클래식 음악
가격 R석 10만 원 / S석 8만 원 / A석 6만 원 / B석 4만 원
주최 예술의전당, 한겨레신문사
문의 02-580-1300

※ 본 공연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한 좌석 띄어 앉기‘로 객석을 운영하오니, 예매 시 참고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