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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그’를 외치기 위한 알쓸신잡

뮤지컬 <스웨그에이지 : 외쳐, 조선!>
1.5(화)~2.28(일) | CJ 토월극장

<스웨그에이지 : 외쳐, 조선!>이라니. 제목부터 ‘힙’한 창작뮤지컬이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에서 막을 올렸다. 2019년 연강홀 초연과 2020년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에서의 재연에 이어 벌써 세 번째 시즌이다. 이번 시즌의 개막은 쉽지 않은 결심이었을 거다. 코로나19가 던진 여러 가지 변수에 이 작품이 포기해야 할 것이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객석의 제한으로 생기는 경제적인 손해는 그렇다 치자. 그것보다 더 큰 위험은 자칫 작품이 지닌 본래의 매력이 시들해질 가능성이다.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이 작품의 재미는 무대의 넘쳐나는 에너지에 관객이 함께 외치고 들썩이는 데 있다. 하지만 비말을 차단하면서 이러한 기운 역시 차단해야 하니 작품으로서는 시작하기도 전에 차 떼고 포 떼이는 격이다. 그럼에도 개막을 하는 힘은 하나, 바로 작품에 대한 확신이다. 확신의 토대는 무엇일까. 미리 알고 보면 작품의 ‘스웨그’를 즐기기에 분명 쓸모가 있을 거다.

#1. 조선이 아닌 ‘조선’

제목에는 설명이 필요하다. <스웨그에이지 : 외쳐, 조선!>이라지만 제목이 가리키는 ‘조선’은 우리가 알고 있는 왕조 조선이 아니다.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헬조선’이라는 자조적 표현에 대한 반어적인 제목이라고 한다.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여기는 지옥이지만 그럼에도 이 자리가 우리가 살아가야 할 곳이라면 당당히 일어서서 우리가 살아 있음을 외쳐야 하지 않겠나. 이 작품의 관심은 ‘헬’이라는 접두사를 ‘외쳐!’의 선언으로 뒤집는 데 있다. ‘조선’은 그저 희망을 빼앗긴 사람들이 되찾아야 할 자존감을 상징하는 일종의 대명사인 셈이다. 사극이라는 강박은 애초에 이 작품에 스며 있지 않다.

허구의 나라 조선을 배경으로 새로운 세상을 향한 꿈을 담은 <스웨그에이지 : 외쳐, 조선!>.

역사의 강박이 없는 시대물에 가장 잘 어울리는 이야기의 옷은 무협지의 활극일 터. ‘조선’의 이야기는 마음껏 무협지답다. 의로운 아비의 억울한 죽음, 아비를 죽인 원수의 권력, 죽음의 진실을 알게 된 아들의 복수, 그의 복수를 돕는 아비의 지인, 외나무다리에서의 복수의 실현, 무너진 정의를 다시 세우는 최종적인 승리 등등. 이야기의 사이사이에 평등한 사회를 꿈꾸는 민초들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이 작품의 이야기는 흔들림 없는 무협의 서사다. 선과 악에 대한 분명한 확신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지루하지 않게 흘러가는 이야기. 이 작품의 ‘스웨그’가 준비되는 첫 번째 토대다.

#2. 힙합이 된 시조

그런데도 이 작품은 평범한 무협지처럼 보이지 않는다. 왜일까. 이유는 주인공의 ‘무기’에 있다. 무협의 주인공이 선택한 무공의 도구가 다름 아닌 시조이기 때문이다. 시조로 악당을 물리치고 정의를 세운다니. 시가 문학이라면 시조는 노래인바, 이 작품은 사람들의 노래가 세상을 바로 세우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이에게 시와 노래는 애달픈 양식”이건만 그 양식마저 빼앗아버리는 세상이라면? 맞서 싸우는 방법은 하나다. 자기만의 시와 노래로 다 함께 소리 질러~ ‘외쳐!’ 이 작품이 펼치는 낭만의 상상은 무협의 결기보다 훨씬 멋지다.

이 작품의 ‘스웨그’는 여기서 빛을 발한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시조들은 힙합의 옷을 입고 지금 여기 젊은이의 음악으로 다시 살아난다. 쏟아지는 말이면서도 운율의 멋이 살아 있는 사설시조야말로 몇백 년 전부터 이미 있었던 랩이었구나. 이 새삼스러운 재미를 극장에서 꼭 확인하시길. 사실 이 작품은 드라마를 따라가는 것보다 이런 퍼포먼스를 보는 재미가 훨씬 크다. 힙합의 리듬으로 읊어대는 시조에 재치와 감각이 넘치는 춤이 더해지고, 그것을 폭발하는 에너지로 뿜어내는 배우들의 흥겨움까지 더해지면 객석에서도 이내 몸이 들썩들썩거린다. 힙합, 스윙 재즈, 록, 팝 등 모든 장르를 그러모은 이 작품의 음악에 굳이 뮤지컬의 음악적 문법을 들이댈 필요는 없다. 뮤지컬의 넘버일 때보다 독립된 퍼포먼스일 때 더 빛나면 어떤가. 음악이 시작되면 그저 콘서트를 보는 것처럼 즐기면 된다. 이런 에너지야말로 작품이 확신하는 자신감일 거다.

왼쪽부터) 단 역을 맡은 배우 이호원, 양희준, 박정혁.

#3. 다양함으로 넓어진 뮤지컬의 자리

각각의 개성을 가진 16명의 캐릭터가 등장하는 것만 봐도 <스웨그에이지 : 외쳐, 조선!>은 다른 창작뮤지컬과 비교해볼 때 규모부터 다르다. 서너 명을 넘지 않으면서 감정에 몰입하는 이야기가 대다수였던 창작뮤지컬의 흐름에서 이런 작품은 오히려 낯설기까지 하다. 제작사의 기획에서는 만들어지기 힘든 공연인 거다. 아직 기성의 ‘쪼’가 박히지 않은 신인배우들의 거침없는 에너지가 그대로 담길 수 있었던 것 역시 같은 이유일 터. 그 덕분에 초연 때 양희준과 김수하의 첫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이번 시즌에서도 새로운 얼굴을 기대해봄 직하다. 이 작품 덕분에 창작뮤지컬은 여러모로 다양성의 지평을 확보하게 된 셈이다.

왼쪽부터) 진 역을 맡은 배우 김수하와 문은수.

그중에서도 이 작품이 확인시킨 중요한 지점이 있다. 뮤지컬은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대중적인 장르라는 사실. 당연하지만 어느새 새삼스러워진 사실이기도 하다. 만만찮은 티켓 가격으로 진입장벽이 높은 초대형 뮤지컬이나, 관극을 위해서 먼저 숙지해야 할 규칙이 많은 소극장 뮤지컬이나, 이 모든 흐름이 다양성이라는 틀로 공존할 수 있으려면 가격이나 취향면에서 중간층이 볼 만한 뮤지컬이 많아져야 한다. <스웨그에이지 : 외쳐, 조선!>은 그런 기준에 딱 맞는 창작뮤지컬이다. 뮤지컬을 처음 보는 사람, 가족과 함께 공연을 보고 싶은 사람, 극장에서 신나게 공연을 즐기고 싶은 사람 등등 누구든 상관없이 모두가 즐겁게 볼 수 있는 작품인 거다. 오랜만에 창작뮤지컬이 멋지고 즐겁게 가벼워졌다.

랩으로 읊는 시조, 다양한 장르의 춤까지 조화를 이룬 <스웨그에이지 : 외쳐, 조선!>.

CJ 토월극장의 넓은 무대를 넉넉히 채울 수 있는 에너지를 기대해본다. 코로나19 때문에 객석은 채워질 수 없다 해도 배우가 단단히 지키고 있는 무대가 여기 있다. 이 귀한 공간이 공연의 에너지로 가득 차게 된다면! 그 에너지가 흘러넘쳐 비어 있는 관객의 옆자리까지 전해질 때 코로나19 따위는 생각도 나지 않을 거다. 공연의 ‘스웨그’란 이런 게 아닐까.

사진 PL엔터테인먼트, 셔터스톡

* 출연 배우 이미지 외 모든 이미지는 본 공연과 관계없음을 밝힙니다.

정리 예술의전당 웹진 편집팀
사진 김경훈, 셔터스톡

* 본 기사는 김경훈 사진기자와의 인터뷰를 토대로 작성되었습니다.

정수연 뮤지컬평론가·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
문학과 연극을 공부했다. 연극과 뮤지컬을 위주로 이런저런 글을 써왔다. 지금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연극과 뮤지컬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다.

창작뮤지컬 <스웨그에이지 : 외쳐, 조선!>

기간 2021.1.5(화)~2021.2.28(일)
시간 화, 목 7:30PM/ 수, 금 3PM, 7:30PM/ 토 2PM, 6:30PM / 일 2PM
* 매주 월요일 공연 없음
장소 CJ 토월극장
관람등급 8세 이상
관람시간 100분
장르 뮤지컬
가격 R석 9만9,000원/ OP석 9만9,000원/ S석 7만7,000원/ A석 5만5,000원
주최 PL엔터테인먼트, 럭키제인타이틀, ㈜씨제이이엔앰
후원 피앤아이인베스트먼트㈜, SK브로드밴드㈜, JACKY
문의 070-7724-15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