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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트렉의 포스터 속 세 사람을 만나다

<툴루즈 로트렉 展 - 물랭루즈의 작은 거인>
1.14(화)~5.3(일) | 한가람미술관
을 해설하는 3인의 도슨트가 이번 전시에 소개된 작품을 통해 이 세 사람과 로트렉 사이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제인 아브릴, 아리스티드 브뤼앙 그리고 이베트 길베르. 각각 무희, 음악인, 가수로 벨에포크 시대의 파리를 빛낸 이 세 명의 대중예술가에게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몽마르트르에서 자신의 재능으로 파리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주었다는 것, 그리고 ‘물랭루즈의 작은 거인’ 툴루즈 로트렉이 그린 포스터 속에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로트렉은 왜 이 세 사람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을까? <툴루즈 로트렉 展 – 물랭루즈의 작은 거인>을 해설하는 3인의 도슨트가 이번 전시에 소개된 작품을 통해 이 세 사람과 로트렉 사이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로트렉의 뮤즈, 제인 아브릴

프랑스어로 ‘좋은 시대’를 뜻하는 ‘벨에포크Belle Époque’.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이르는 이 황금 시기의 파리에는 예술과 문화의 향기가 넘쳐흘렀다. 물랭루즈Moulin Rouge에서 일하는 매춘부의 딸로 태어나 몽마르트르의 무희가 된 제인 아브릴Jane Avril은 툴루즈 로트렉Henri de Toulouse Lautrec의 뮤즈이기도 했다.

1889년 파리에 세워진 에펠탑은 벨에포크 시대를 상징한다. 그런데 사실 파리에는 벨에포크를 대표하는 또 다른 공간이 존재한다. 하층민부터 귀족까지 다 함께 모여 독한 술을 마시며 춤을 추는 화려한 카바레가 즐비했던 물랭루즈가 그곳이다. 그리고 물랭루즈에는 전설 같은 화가 툴루즈 로트렉이 있었다.

언제나 입에 술을 머금고 있던 그의 두 눈은 항상 무대를 향했다. 그의 손은 댄서들의 춤사위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종이 위에서 빠르게 그림을 그려나갔다. 그런 그가 유독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모습으로 표현한 댄서가 한 명 있었다. 그의 이름은 ‘제인 아브릴’. 사생아로 태어난 아브릴은 매춘부인 어머니의 학대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10대 중반이 되자 어머니는 그런 딸을 매춘부로 팔아넘기려 했다.

을 해설하는 3인의 도슨트가 이번 전시에 소개된 작품을 통해 이 세 사람과 로트렉 사이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툴루즈 로트렉, <제인 아브릴, 자댕 드 파리>, 1895, 다색 석판화, 128⨉91.5cm, 국립도서관

을 해설하는 3인의 도슨트가 이번 전시에 소개된 작품을 통해 이 세 사람과 로트렉 사이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툴루즈 로트렉, <디방 자포네>, 1893, 다색 석판화, 78.8⨉59.5cm, 국립도서관

그때 아브릴이 죽을힘을 다해 도망쳐 도착한 곳이 바로 몽마르트르다. 그가 처음부터 춤을 춘 것은 아니었다. 몽마르트르에 정착한 아브릴은 1889년 열린 파리 만국 박람회 매표소에서 일했다. 그런데 그에게는 병이 하나 있었다. 병명은 ‘무도증’. 이 병의 증상 중 하나는 바로 ‘틱’이었다. 증상이 점점 심해지자 아브릴은 의사를 찾아갔다. 의사는 뜻밖의 해결책을 주었다. ‘격렬하게 춤을 추어보라’는 것. 그는 반신반의하면서 온 근육을 사용해 춤을 추었고 예상외로 증상이 호전되는 것을 느꼈다. 그 순간 해방감을 느낀 아브릴은 물랭루즈의 캉캉 춤 댄서로 활약하게 된다.

로트렉이 그린 포스터 <제인 아브릴, 자댕 드 파리>를 보자. 로트렉은 상단에 그의 이름을 강조하듯 써놓았고 그의 특징인 긴 다리를 높게 든 캉캉 동작을 빠르게 포착해 그려 넣었다. 그런데 전경에 묘사된 악기의 모양이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로트렉은 악기를 마치 남성의 성기처럼 그려 남성들의 성욕을 자극하려 한 것이다. 이 포스터 덕분에 제인 아브릴은 물랭루즈의 스타가 된다.

또 다른 포스터 <디방 자포네>도 흥미롭다. ‘일본풍’이란 뜻의 문구가 담긴 이 포스터는 새로 개업한 카페의 홍보 포스터였다. 당시 파리 화단에서는 일본의 다색 목판화 ‘우키요에’의 영향으로 일본식 화풍이 유행하고 있었다. 이 포스터는 인상파 화가들과 일본 우키요에 화가들의 연관성을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한다. 작품 속에는 제인 아브릴이 도회적인 검은색 의상을 차려입고 우아하게 무대를 감상하고 있다. 마치 이곳에 가면 물랭루즈의 스타 제인 아브릴을 볼 수 있다는 뜻처럼 느껴진다.

을 해설하는 3인의 도슨트가 이번 전시에 소개된 작품을 통해 이 세 사람과 로트렉 사이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로트렉, <제인 아브릴>, 1899, 다색 석판화, 54.6⨉36.2cm

로트렉은 총 31점의 포스터를 남겼다. 서른 번째 작품 <제인 아브릴>(1899)은 그가 마지막으로 그린 아브릴의 포스터다. 아브릴의 사진을 보고 그린 이 작품은 다른 작품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준다. 포스터 속 아브릴은 춤을 추는 것 같지만 한편으로는 고통에 몸부림치는 듯 보이기도 한다. 이것은 아마도 로트렉의 의도였을 것이다. 마지막만큼은 아브릴의 내면, 아무도 바라보지 않았던 그의 고통을 그리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다른 댄서와 다르게 독서를 좋아했고 그림의 가치를 알아봤던 제인 아브릴은 로트렉의 뮤즈였다. 로트렉은 그에게만큼은 자신의 그림을 공짜로 주었다고 한다. 이 작품을 마지막으로 로트렉은 아브릴이 춤추는 모습을 두 번 다시 볼 수 없게 되었다. 로트렉이 아브릴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이었던 셈이다.

정우철 전시 해설가, 도슨트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한 후 그림을 좋아해 전시 해설가로 활동 중이다. 현재 <툴루즈 로트렉 展 – 물랭루즈의 작은 거인>, <알폰스 무하 展>에서 해설하고 있다.

로트렉의 동반자, 아리스티드 브뤼앙

한 시대를 대표하는 예술가의 탄생에는 반드시 운명의 동반자가 함께한다. 단조로운 듯 섬세한 선과 강렬한 색감 표현으로 ‘물랭루즈의 작은 거인’이라 불렸던 로트렉에게는 아리스티드 브뤼앙Aristide Bruant이라는 예술적 동반자가 있었다.

방탄소년단(이하 ‘BTS’)의 신곡 ‘ON’이 빌보드 차트를 포함한 전 세계 음악 차트를 석권하고 있다. 21세기에 BTS가 있는 것처럼 19세기 파리의 몽마르트르에는 샹송 가수이자 작사, 작곡가였던 아리스티드 브뤼앙이 있었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1885년 7월 카페 ‘샤 누아르Chat Noir 자리에 아리스티드 브뤼앙이 ‘미를리통Le Mirliton’이란 카바레를 열었다. 툴루즈 로트렉은 매일 저녁 이 술집의 홀에 나타나는 단골손님이었다. 카바레의 간판에는 ‘미를리통, 당신이 자신을 질책하고 싶을 때 찾는 곳’이란 문구가 쓰여 있었는데, 미를리통과 브뤼앙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간판이다. 브뤼앙의 카바레에는 교양 있는 신사와 귀부인은 없었다. 브뤼앙은 파리의 하층 계급 사람들과 어울리며 이들의 삶 속에서 발견한 아름다움을 샹송으로 노래하는 한편, 부르주아들에게는 욕설을 퍼부었다. 하지만 부르주아들은 브뤼앙의 건방진 스타일의 공연을 좋아했다고 한다.

을 해설하는 3인의 도슨트가 이번 전시에 소개된 작품을 통해 이 세 사람과 로트렉 사이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로트렉, <아리스티드 브뤼앙>, 1892, 다색 석판화, 149.8⨉100cm,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

로트렉 역시 브뤼앙의 열성 팬이었다. 브뤼앙 또한 로트렉의 그림을 좋아해 자신이 운영하는 미를리통에 걸어놓곤 했다. 오늘날 파리 몽마르트르의 미를리통에서는 로트렉의 포스터를 만나볼 수 있다.

로트렉과 친구가 된 브뤼앙은 1892년 6월 파리에 문을 연 앙바사되르Ambassadeurs 카바레의 주인에게 공연 홍보 포스터를 로트렉에게 맡기자고 제안했다. 이렇게 탄생한 포스터에는 브뤼앙의 강한 이미지가 화면 가득 채워져 있다. 그런데 로트렉의 포스터를 본 카바레 주인은 ‘디자인이 혐오스럽다’며 만족스러워하지 않았고 포스터 게시를 거부했다. 하지만 브뤼앙은 “이 포스터를 쓰지 않으면 공연을 하지 않겠다”라고 협박해 비로소 공연 중반부터 로트렉의 포스터를 사용할 수 있었다. 실제로 파리 전역에 포스터가 붙자마자 사람들은 브뤼앙에게 더 열광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챙 넓은 검은 모자에 검은 벨벳 망토, 붉은 목도리까지. 로트렉은 브뤼앙의 특징을 날카롭게 포착하고 단순화하여 매력적으로 표현했다.

을 해설하는 3인의 도슨트가 이번 전시에 소개된 작품을 통해 이 세 사람과 로트렉 사이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로트렉, <아리스티드 브리앙, 자신의 카바레에서>, 1893, 다색 석판화, 127.3⨉95cm, Herakleidon Museum

로트렉의 포스터가 어마어마한 인기를 끌면서 브뤼앙은 이듬해 자신의 카바레 미를리통의 포스터도 의뢰한다. ‘나를 따라 우리 카바레로 와봐’라고 말하는 듯한 눈빛을 보내는 포스터 속 브뤼앙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로트렉은 이 작품에서 몇 개의 선과 네 가지 색만을 사용해 브뤼앙의 냉소적이고 복잡한 성격까지 드러내는 데 성공했다. 단순화된 이미지로 브뤼앙을 마치 하나의 브랜드처럼 만든 것이다. 브뤼앙은 이후 20년 동안 자신을 홍보하는 이미지로 이 포스터를 사용했다고 한다.

툴루즈 로트렉과 아리스티드 브뤼앙. 이 두 사람의 만남은 ‘잘나가는’ 홍보 마케터와 파리 BTS의 의기투합에 비유할 수 있지 않을까? 로트렉은 브뤼앙을 위해 총 다섯 종류의 포스터를 제작했다. 나머지 포스터들도 궁금하다면 <툴루즈 로트렉> 展에서 직접 만나보기를 바란다.

한이준 도슨트
미술 이야기를 다양한 공간에서 다 같이, 즐겁게 나누고 싶은 도슨트다. 현재 <툴루즈 로트렉 展 – 물랭루즈의 작은 거인>과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 2019>에서 도슨트를 맡고 있다.

로트렉이 열광했던 가수, 이베트 길베르

많은 이들이 수준 높은 공연을 즐기고자 오페라하우스를 찾는다. 하지만 서민은 오페라하우스의 공연보다 트로트 가수 경연 TV 프로그램에 더 열광하기 마련이다. 이는 교양 수준의 문제라기보다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다. 과거에도 귀족과 서민의 유흥거리는 달랐다. 하지만 툴루즈 로트렉은 이런 일반적인 구분에 포함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권력과 재력을 갖춘 명문가의 장남이었던 그는 고상한 귀족 문화보다 몽마르트르 밤거리의 카페 콩세르Café Concert를 더 좋아했다. 흔히 카바레로 칭해지는 19세기의 파리 수많은 카페 콩세르에서 단연 돋보인 가수가 바로 이베트 길베르Yvette Guilbert였다.

을 해설하는 3인의 도슨트가 이번 전시에 소개된 작품을 통해 이 세 사람과 로트렉 사이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로트렉, <디방 자포네>, 1893, 다색 석판화, 78.8⨉59.5cm, 국립도서관

이 작품은 19세기 파리의 카페 콩세르 중 하나였던 ‘디방 자포네Divan Japonais’가 문을 열었을 때의 포스터다. 이 그림 속에는 로트렉이 열광했던 가수 이베트 길베르의 모습이 담겨 있다. 그는 어디에 있을까? 우아한 검은 드레스를 입고 공연을 즐기고 있는 여인일까? 아니다. 검은 드레스의 여인은 로트렉이 물랭루즈에서 가장 좋아했던 댄서 제인 아브릴이다. 그림 속 길베르는 화면 좌측 상단에 위치한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얼굴은 프레임 밖으로 잘린 채 그려진 그의 모습은 지금의 우리로선 쉽게 예측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당시 몽마르트르 밤 문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포스터를 보고 무대 위의 가수가 길베르라는 걸 바로 알 수 있었다고 한다. 이유는 검고 긴 장갑 때문이었다. 그때 많은 가수와 댄서들은 화려한 의상으로 치장했던 반면, 길베르는 자신의 얇고 긴 팔을 부각시킬 수 있는 긴 검은색 장갑만을 시그니처 아이템으로 활용했다.

이베트 길베르에게 푹 빠진 로트렉은 그녀를 위한 화보집 제작에 참여했다. 그 표지에도 긴 검은색 장갑만을 그려 넣음으로써 ‘검은색 장갑=이베트 길베르’라는 암시를 통해 당대의 파리 사람들이 검은색 장갑만 봐도 길베르를 떠올릴 수 있도록 그녀를 아이콘화시켰다.

을 해설하는 3인의 도슨트가 이번 전시에 소개된 작품을 통해 이 세 사람과 로트렉 사이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로트렉, 이베트 길베르 음반 광고, 1894, 석판화, 16.5⨉7.5cm, Herakleidon Museum

툴루즈 로트렉이라는 예술가가 가지고 있었던 가장 큰 능력 중 하나가 바로 이 ‘아이콘화’다. 로트렉은 인물을 아름답게 표현하는 데 재능을 보인 화가가 아니다. 오히려 추하게 그렸다는 표현이 어울릴 것이다. 그러나 세상을 혐오해서 추하게 그렸다기보다는 차별 없는 시선으로 누구든 동등한 인간으로 바라보았고, 그것을 표현했다고 생각하는 게 맞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로트렉이 그린 이베트 길베르의 얼굴은 전혀 아름답지 않다. 실제로 길베르의 어머니는 추하게 그려진 딸의 모습에 화가 나 그를 고소할 생각까지 했다는 일화가 전해지기도 한다. 길베르 역시 로트렉에게 ‘나를 조금만 더 아름답게 그려줄 수 없느냐’는 부탁 아닌 부탁을 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로트렉이 그린 길베르의 얼굴은 어떨까? 이번 <툴루즈 로트렉>展에서 카페 콩세르의 슈퍼스타 이베트 길베르의 모습과 로트렉의 감각적인 작품들을 만나보기를 권한다.

김찬용
13년 차 전업 도슨트로 국내외 주요 미술관의 80여 개 전시에서 도슨트로 활동했다. 현재 구독자 2만4천여 명의 미술 분야 유튜브 채널  ‘김찬용의 아트인사이드, 아싸티븨’를 운영 중이다.

<툴루즈 로트렉>展

기간 2020.01.14(화)~2020.05.03(일)
시간 10:00-19:00(입장 마감 18:00) ※ 매주 월요일 휴관
장소 한가람미술관 1-2전시실
관람등급 전체관람
장르 전시
가격 일반 15,000원/ 청소년(만13~18세) 12,000원/ 어린이(36개월~만12세) 10,000원
주최 현대씨스퀘어, TV CHOSUN
주관 메이드인뷰, 한솔BBK
문의 070-4104-18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