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ME TALK

오페라로 탄생한 환상문학
오펜바흐의 〈호프만의 이야기〉

해설이 있는 음악 시리즈 ①
2019년도 국립오페라단이 막을 올린 〈호프만의 이야기〉 속 한 장면. ⓒ국립오페라단

과학과 이성이라는 이름의 신앙

18세기에는 기계를 이용해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보이는 자동인형을 만드는 것이 크게 유행했다. 자크 드 보캉송이라는 프랑스 사람은 1738년에 플루트를 연주하는 정교한 자동인형을 만들어 인기를 끌었다. 이 인형은 플루트를 연주하는 인간의 손가락과 입술, 근육이 움직이는 원리를 그대로 적용해 만들어졌는데, 그 정교함에 사람들이 혀를 내둘렀다고 한다. 플루트 부는 인형이 인기를 끌자 보캉송은 음식물을 먹으면 그 자리에서 소화시켜 배설까지 하는 기계 오리를 만들었다. 이 ‘배설하는 오리’는 후대 사람들에 의해 진짜로 음식물을 소화시킨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여하튼 당대에는 이것을 진짜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았다.

놀라운 것은 이렇게 가짜가 판치던 시대가 인간의 이성(理性)과 과학을 무엇보다 중요시했던 계몽주의 시대였다는 데에 있다. 계몽주의자들은 이성과 과학이 우주와 세계는 물론 인간 자신도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으며, 이성과 과학을 통해 사회와 자연이 진보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런 신념에 힘입어 해부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으며, 과학과 기구 설계 기술이 발달했다.
하지만 이성과 과학에 대한 맹신은 종종 진짜를 가장한 가짜들을 양산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 가짜 과학자, 사기꾼, 발명가, 연금술사, 돌팔이 의사들이 과학의 이름으로 옛날에 마술사들이 했던 것과 똑같은 일들을 하기 시작했다. 마법사들의 야망이 과학이라는 존경받는 이름으로 되살아난 것이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성악가 바리톤 김동규가 오는 10월 30일 관객과 만날 예정이다. 예술의전당 스페셜데이콘서트 <10월의 어느 멋진 날>을 통해서다. 공연을 한 달여 앞둔 지난 24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김동규를 만났다.

오페라로 탄생한 환상문학, 오펜바흐의

호프만의 단편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오페라 〈호프만의 이야기〉. ⓒ국립오페라단

이와 더불어 계몽주의는 서서히 빛을 잃어갔다. 계몽주의자들은 인간의 이성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역설했으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프랑스혁명에 이어 찾아온 공포정치와 왕정복고는 이상적인 정치제도에 대한 회의를 낳았고, 종교가 떠난 자리에 대신 들어선 이성은 하느님 나라에 버금가는 위안과 안식을 인간에게 가져다주지 못했다. 그들이 금과옥조로 삼았던 인간의 이성은 사실 불완전한 것이었다.
이성과 과학에 대한 지나친 믿음과 낙관이 참담한 실패로 끝나자 사람들은 다른 방법으로 돌파구를 찾기 시작했다. 낭만주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낭만주의는 계몽주의에 대한 반발에서 시작되었다. 낭만주의자들은 인간에게 이성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그 무엇이 있다고 생각하고, 열정, 꿈, 광기, 환상의 세계로 눈을 돌렸다. 그들은 정신착란에 빠지거나 열병에 걸린 사람처럼 머릿속에 떠오르는 온갖 과도한 감정과 충동들을 그대로 자기 작품에 담았다. 이렇게 망상과 광기에 사로잡혀 쓰인 낭만주의 작품 중에서 E.T.A. 호프만의 『모래 사나이』는 그 증세가 가장 심한 축에 속한다.

호프만의 문학을 흔히 환상문학이라 부른다. 환상문학은 이른바 급격한 문화사적 전환기, 기존의 가치관이 붕괴되고 새로운 가치관이 도래하는 불확실한 시대의 산물이다. 이성에 대한 믿음이 붕괴되면서 사람들은 길을 잃었다. 현실의 도구로는 이제 더 이상 이 세상을 파악할 수도, 수용할 수도 없게 되었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환상문학이 꽃을 피웠다. 환상문학에서는 현실 세계와 환상 세계가 교묘하게 얽혀 있다. 주인공이 살고 있는 세계는 분명 현실이지만, 세계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이상하고 기이한 일들이 계속 벌어진다. 주인공은 무엇인가에 홀려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을 저지른다. 광기에 사로잡혀 때로 엽기적인 행동을 하기도 한다.
환상문학의 대표작인 호프만의 『모래 사나이』는 주인공 나타나엘이 스팔란차니라는 과학자가 만든 인형을 진짜 사람으로 알고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을 갖고 있다. 이성의 밝은 빛 저편에 존재하는 인간 정신의 또 다른 일면을 심층적으로 다룬 이 작품은 파국으로 끝난다.

환상문학과 오페라의 만남

호프만의 『모래 사나이』는 오펜바흐에 의해 오페라로 만들어졌다. 〈호프만의 이야기〉라는 작품이다. 〈호프만의 이야기〉는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포함해 모두 5막으로 이루어진 대작인데, 그중 제1막이 『모래 사나이』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든 것이다.
오페라의 주인공 호프만은 어느 날 과학자 스팔란차니가 여는 파티에 참석하려고 그의 집을 찾는다. 이때 스팔란차니는 호프만에게 과학이 모든 것 중 으뜸이라고 하면서 문학이니 예술이니 이런 것들을 집어치우고 과학자가 될 것을 권유한다. 이 장면은 계몽주의 시대 사람들의 과학에 대한 맹신을 그대로 보여준다. 스팔란차니는 그 과학을 바탕으로 인형을 만들고, 그것을 자기 딸 올림피아라고 호프만에게 소개한다. 올림피아가 인형인 줄 모르는 호프만은 그 아름다운 자태에 한눈에 반해버린다. 올림피아는 연회에 참석한 사람들 앞에서 하프 반주에 맞추어 노래를 부른다. ‘인형의 노래’로 유명한 ‘새들은 나뭇가지 사이에(Les Oiseaux Dans La Charmille)’이다.

정원에는 새들이
하늘에는 낮에도 빛나는 별들이
모든 것들이 소녀에게 말합니다
사랑의 말을
이 노래 사랑스러운 노래 올림피아의 노래
만물이 노래합니다
그리고 한숨 쉽니다
사랑으로 떨리는 그녀의 마음
그것은 매력적인 노래
올림피아의 노래

오페라로 탄생한 환상문학, 오펜바흐의

연회에서 노래를 부르는 인형 올림피아. ⓒ국립오페라단

‘인형의 노래’는 뚝뚝 끊어지는 음형과 기계적인 콜로라투라 패시지를 통해 이것이 사람의 노래가 아닌 인형의 노래라는 것을 암시한다. 중간에 태엽이 풀려서 음이 내려가고 템포가 느려지면서 인형의 머리가 아래로 고꾸라지자 스팔란차니는 인형 몸에 있는 태엽을 다시 감는다. 그러자 인형이 다시 일어나 예의 그 기계적인 목소리와 동작으로 노래를 계속한다.
‘인형의 노래’가 나오는 이 장면은 이런 계몽시대의 과학에 대한 맹신과 유사 과학이 야기한 인간의 광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여기서 스팔란차니는 자기가 만든 물건과 거의 미신적인 관계에 빠져 있다. 그는 그 기계장치에 올림피아라는 이름을 붙이고, 사람들에게 자기 딸이라고 소개한다. 자기의 발명품에 사람들이 감쪽같이 속는 것을 보고 과학의 위대함을 다시 한번 확신한다.
노래가 끝난 후 손님들이 모두 저녁을 먹으러 만찬장으로 가자 방에는 호프만과 올림피아 단둘만 남게 된다. 호프만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그리고 두 사람이 함께 춤을 춘다. 춤 동작은 점점 빨라져 호프만이 따라갈 수 없을 정도가 된다. 그런데도 올림피아의 춤은 멈추지 않고 결국 호프만은 기진맥진해서 쓰러진다.

오페라로 탄생한 환상문학, 오펜바흐의

올림피아의 실체를 모른 채 사랑에 빠진 호프만. ⓒ국립오페라단

바로 그때 화가 잔뜩 난 코펠리우스가 들어온다. 코펠리우스는 스팔란차니의 요청으로 올림피아의 눈을 만들어주고 수표를 받았는데, 그것이 바로 부도어음이라는 것을 알고 분개해서 그를 찾아온 것이다. 화가 난 코펠리우스는 올림피아를 산산조각 낸다. 호프만은 그제야 올림피아가 인형이라는 것을 알고 절망한다. 〈호프만의 이야기〉의 1막은 호프만이 팔다리가 떨려 나간 올림피아를 보고 경악하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인형이 산산조각 나는 순간 호프만의 환상도 산산조각이 나고 만다. 여기서 인형의 파멸은 계몽주의의 파멸을 의미한다.

오페라로 탄생한 환상문학, 오펜바흐의

오페라로 만들어진 환상문학의 새로운 모습. ⓒ국립오페라단

플루트 부는 인형과 소화시키는 오리를 만들어 재미를 보았던 보캉송은 나중에 혈관에 피가 흐르는 인조인간을 만들 계획까지 세웠다. 그러다가 돌연 이 계획을 취소했는데, 그 이유는 지겨워졌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정말 그것이 이유였을까? 그는 이것이 실현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스스로 이 사기 행각을 멈추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사진 국립오페라단

글 진회숙 음악 평론가/ 음악칼럼니스트
이화여자대학교 음악대학과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KBS, MBC를 비롯한 여러 방송국의 클래식 음악 프로그램 구성 작가 및 진행자로 활동했다. 현재 클래식 관련 책을 집필하거나 대중을 대상으로 클래식 음악 강좌를 하고 있다. 저서로는 『클래식 오디세이』, 『영화와 클래식』, 『무대 위의 문학 오페라』 등 다수가 있다.

<10월의 어느 멋진 날>

기간 2020.10.30(금)
시간 7:30PM
장소 콘서트홀
관람등급 8세 이상 관람
관람시간 120분
장르 클래식 음악
가격 R석 10만 원 / S석 8만 원 / A석 6만 원 / B석 4만 원
주최 예술의전당, 한겨레신문사
문의 02-580-1300

※ 본 공연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한 좌석 띄어 앉기‘로 객석을 운영하오니, 예매 시 참고 부탁드립니다.